결별의 미학

by 글객

헤어짐은 언제나 잔인한 게 아니라, 헤어짐은 언제나 잔인해야 한다.


연인관계의 종착점에서 헤어짐을 통보당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마지막 권리는 헤어짐을 통보한 사람에게 '개새끼'라고 말할 수 있는 일말의 자격이다. 그 자격은, 결별을 결심 한자가 결별을 통보할 때 발생시키는 연인 관계의 비균형을 해소시키고, 결별을 당하는 자가 관계의 종결이 만들어내는 정서 폭력의 불쌍한 희생양으로만 남지는 않게 하는 최후의 권리가 된다. 결별의 통보자가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관계라는 계약, 그리고 그 계약을 파기시킬 때 점령하게 되는 관계 속에서의 상대적 우위, 그 우위를 끌어내릴 만한 권리가 결별을 당하는 자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연인이라는 관계는 불균형 속에서 종결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별을 당하는 자에게는 상대방에게 '너 같은 새끼는 필요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최후의 권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권리를 가지기 위해서는 심정적 근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심정적 근거는 결별을 통보하는 자의 못된 언사와 못난 행동으로부터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대가 '개새끼'의 모습에 충실할수록 '개새끼'라 말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반대로 좋은 모습으로 결별을 통보하는 자에게 '개새끼'라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그것은 말하는 자에게 죄책감을 발생시킨다. 결별을 마음먹은 마당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답시고 저 혼자 미안한 척, 어쩔 수 없는 척, 여전히 사랑하는 척,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대면 그것은 이미 결별이 주는 정서 폭력의 희생양이 된 상대방에게 죄책감과 회한이라는 또 다른 짐마저 넘겨주는 꼴이 된다. 그것은 좋은 관계로 남기 위한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이 전혀 아니며 역설적으로 관계의 종결이 발생시키는 모든 정서적 짐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일이 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그럴 바엔 차라리, '난 이제 네가 싫다'라고 단호하고 직접적으로 말하며 누군가는 지어야 할 짐을 군말없이 지는 것이 결별을 행하는 자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미 결별을 마음먹은 가운데 나쁜 놈마저 되지 않으려는 마음은 둘이 형성해온 관계를 매듭짓는 데 있어서 어떤 정서적 짐도 떠맡지 않으려고 하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헤어짐을 말하는 사람이 모질게 굴어야 함은 여기에 있다. 모질고, 못나고, 옹졸하고, 철없게, 또 나쁘게 행동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러한 행동이 결별받는 자의 삶에서 결별을 통보하는 자의 존재감을 떨구고, 그렇게 존재감을 떨구어 내야만 지금의 헤어짐이 주는 안타까움의 크기도 함께 줄어들기 때문이다. 어떤 운명적 서러움을 만들지 않는 것, 또 한 사람의 인생에 후회스러운 인식을 남기지 않는 것. 더불어 결별을 당하는 자의 입장에서 지금의 결별이 별 것 아니고 영 해로운 무엇인가를 자신의 인생에서 떨쳐버리는 일이라는 합리적 생각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결별받는 자가 '너 같은 새끼는 내 인생에서 필요 없어'라고 과감하고도 단호히 말할 수 있는 자격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동등한 지위와 동등한 쓰라림을 가지는 헤어짐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헤어짐을 결심하는 사람들이여 상대에게 돌직구를 던져라. 당신이 내쳐버린 그 사람이 당신에게 '개새끼'라 욕할 수 있는 마지막 권리를 제공하여라. 그것이 이미 헤어짐을 결심한 당신이 상대에게 할 수 있는 최후의 배려이자, 관계를 매듭지을 때 당신이 지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결별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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