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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Jun 17. 2022

불안이라는 과속방지턱

내가 아무렇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문제시할 때 비로소 문제가 된다. 서랍 속의 물건은 꺼내보기 전까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나의 불안함을 내비치면 그것은 비로소 불안함이 되지만 내 안의 불안함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구태여 꺼내놓지 않으면 그것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불안함은 전염병과 같아서 꺼내 두는 순간 주변으로 삽시간에 퍼지게 된다. 그리고 그 기운은 다시 나를 불안하게 한다.


그런 척하다 보면 정말로 그래 진다. 괜찮은 듯 있으면 정말로 괜찮아진다. 불안한 감정을 그냥 두지 않고 이래저래 증폭시키면 정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양한 감정과 생각마저 불안함으로 물들게 된다. 상처를 계속 긁어대면 아물지 못하고 덧나듯이 불안한 감정은 그냥 두는 게 상책이다. 그 감정이 가리고 있는 이면의 좋은 상태를 기억하고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시간이 온전해진다. 시간이 내 편이 된다. 시간이 적이 되는 순간 문제 해결은 요원한 것이 돼버린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거운 책무를 해야 할 때 불안함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상이란 별로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렇게 치면 불안이란 결국 일상이다. 도로 위의 과속방지턱처럼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과속방지턱을 만나면 속도는 줄이되 그냥 지나가면 될 일인 것처럼 말이다. 과속방지턱이 불편하다고 그것을 잡아 뽑을 수는 없다. 불안함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를 운용하는 이상 계속 과속방지턱을 만나야 하는 것처럼 일상을 사는 이상 불안한 감정이 찾아오는 것은 우리에게 숙명이다. 그래서 사뿐히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 이상은 없다. 불안함을 대하는 가장 좋은 태도는 불안함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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