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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Jun 26. 2022

표현할 수 있는 것까지만 나의 것이다.

살면서 들었던 뇌리에 박히는 여러 가지 명언들 중 하나가 '표현할 수 있는 것까지만 내 것이다'라는 말이다. 표현이란 내 생각 또는 감정을 여러 가지 수단에 담아서 누군가에게 보내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이나 감정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온전히 전달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모두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집단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개인의 외부로 표출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어진다. 스쿠르지 영감처럼 억만금의 돈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외부로 흐르지 않으면 사회적 측면에서는 그 돈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표현하지 않은 생각과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돼버리고 표현을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에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 마찬가지로 그것은 세상의 입장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게 돼버린다. 호랑이처럼 혼자 살아가는 생물은 내 안의 것을 굳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데 크게 문제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삶에서 표현은 절대적이다. 집단으로 살아가는 인류의 입장에서 그 각각의 개체를 연결하는 기초적인 수단이 '표현'이기 때문에 그 표현에 내 생각과 감정을 담아내지 못하면 그것은 내 것이어도 내 것이 아닌 결과를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그래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란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키워내는 것 역시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자칫 존재하지 못할 수도 있는 어떤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노력이다. 어휘력이 좋은 사람은 같은 느낌을 가져도 그것을 더 온전하게 세상에 꺼내어 놓을 수 있다. 그 반대의 케이스는 꺼내지기 전에 생각이 사라지거나 아니면 꺼내는 과정에서 어딘가 상처를 입게 된다. 언어뿐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표현이 모두 마찬가지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이 있는데 생각을 적절히 잘 표현한다는 것은 개인의 입장에서 뿐만이 아니라 집단의 입장에서도 나 자신을 존재하게 만드는 방법이 된다. 누군가를 '존재감이 있다'라고 표현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 누군가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지 표현을 잘 해내어 자기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각인시키는 사람들이다.


인간은 모든 괴리로부터 고통을 받는다. 내 안의 생각과 표현능력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는 어쩌면 나의 생명력을 시나브로 앗아가는 괴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표현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이요 그렇게 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내 안에 아무것도 남는 것 없이 무엇인가를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아마도 우리의 하루하루는 언제나 활홀함으로 가득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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