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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May 28. 2023

언어라는 터널

불교의 말씀 중 좋아하는 것 하나는 '표현하려고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 말은 무엇인가를 느낄 때 그것을 굳이 표현하려고 하지 말라는 조언이다. 표현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 과정에서 내가 느꼈던 그 무엇인가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디어나 영감이 떠올랐을 때 그것을 누군가에게 표현하려고 하면 내가 느꼈던 것보다 무엇인가 부족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이는 언어의 한계에 해당한다. 언어는 필터와 같아서 느낀 영감이 온전한 형태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이는 마치 택배비와 같다. 중간 과정에서 수수료가 발생하는 것이다. 허나 조금 다른 것은 택배의 경우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할 뿐 그 물건은 온전히 누군가에게 전달되지만 느낀 것을 언어적으로 전달하는 경우 그 느낀 것의 훼손이 수수료가 된다는 점이다. 느낀 것 자체를 깎아내리지 않으면 그것을 전달할 수 없다. 그래서 전달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경우 굳이 그것을 표현하여 훼손하지 말고 온전히 느끼라는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누군가에게 전달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훼손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훼손을 최대한 줄일 것인가가 된다. 훼손이 없이는 전달할 수 없다. 그러나 더 적합한 단어, 더 명료한 표현, 장황한 설명을 방지한느 참신한 비유 등이 있으면 그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 언어라는 것이 느낌을 전달하는 통로라면 표현이 더 풍성해질수록 그 통로는 넓어진다. 통로가 좁거나 부실하면 내가 느낀 것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고 중간에서 물 새듯 새기 마련이다.


언어의 한계와 이에 비롯되는 전달의 제한성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엉뚱하게도 듣는 이를 탓하게 된다. 이제는 10년이 다 되어가는 드라마 미생 속 마 부장처럼 설명은 개떡같이 하면서 듣는 이가 찰떡같이 알아듣길 바라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조금만 시야를 돌리면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두루두루 존재한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인생에 있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2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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