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무엇을 위해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일까. 혹자는 인생의 목적은 애초에 없다고도 말한다. 그렇다면 그냥 아무렇게 살아가도 되는 걸까. 하지만 아무도 누군가의 인생의 결과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생의 의미는 결국 스스로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과거를 불현듯 떠올릴 때 후회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기록이라고 해서 꼭 활자로 된 어떤 흔적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물건을 사는 것도 기록이고 사람을 남기는 것도 기록이다. 여행에서 물건을 사면 그 기억이 물건에 담기고 그 물건을 꺼내들 때 다시 그 기억이 떠오른다. 어떤 시절을 함께한 사람도 중요한 기록이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그 시절이 다시 소환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반복이 지겨워질 만큼 사람은 훌륭한 기록이다. 상대방을 기록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중요한 기록물로 역할해 주는 것이다.
인생이 주어진 시간 동안에 무엇인가를 채워가는 과정이라면 기록이란 그 채워감의 좋은 수단이 되지 않을까. 살아온 과거를 통해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그 과거를 바라볼 수 있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을 때 허무감을 느끼는 것 같다. 기억도 기록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와 무관하고 휘발성이 높은 취약한 기록이다. 기록을 통해 삶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또 존재했는지 이따금씩 생각해 보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작은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기록은 그래서 중요하다. 일을 하든 취미를 즐기든 나중의 나 자신이 다시 그것을 꺼내어 보는 상황을 상정하며 기록을 남긴다는 태도로 그것을 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그것을 왜 했는지 어떤 동기로 시작했는지 또 어떤 이유로 중단했는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소실되고 그 자리엔 허무감만 남는다. 그 황량한 감정은 굳이 느끼지 않아도 좋을 만큼 거북한 감정이다. 기록도 사람도 남지 않은 내 과거의 일부가 나를 때때로 처연하게 만든다.
23.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