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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May 29. 2023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과거

인생은 무엇을 위해 계속해서 걸어가는 것일까. 혹자는 인생의 목적은 애초에 없다고도 말한다. 그렇다면 그냥 아무렇게 살아가도 되는 걸까. 하지만 아무도 누군가의 인생의 결과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생의 의미는 결국 스스로 부여해야 하는 것이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과거를 불현듯 떠올릴 때 후회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기록이라고 해서 꼭 활자로 된 어떤 흔적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물건을 사는 것도 기록이고 사람을 남기는 것도 기록이다. 여행에서 물건을 사면 그 기억이 물건에 담기고 그 물건을 꺼내들 때 다시 그 기억이 떠오른다. 어떤 시절을 함께한 사람도 중요한 기록이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 그 시절이 다시 소환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반복이 지겨워질 만큼 사람은 훌륭한 기록이다. 상대방을 기록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중요한 기록물로 역할해 주는 것이다.


인생이 주어진 시간 동안에 무엇인가를 채워가는 과정이라면 기록이란 그 채워감의 좋은 수단이 되지 않을까. 살아온 과거를 통해 자기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라면 그 과거를 바라볼 수 있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을 때 허무감을 느끼는 것 같다. 기억도 기록이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와 무관하고 휘발성이 높은 취약한 기록이다. 기록을 통해 삶을 차곡차곡 쌓아나가고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또 존재했는지 이따금씩 생각해 보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작은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기록은 그래서 중요하다. 일을 하든 취미를 즐기든 나중의 나 자신이 다시 그것을 꺼내어 보는 상황을 상정하며 기록을 남긴다는 태도로 그것을 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내가 그것을 왜 했는지 어떤 동기로 시작했는지 또 어떤 이유로 중단했는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소실되고 그 자리엔 허무감만 남는다. 그 황량한 감정은 굳이 느끼지 않아도 좋을 만큼 거북한 감정이다. 기록도 사람도 남지 않은 내 과거의 일부가 나를 때때로 처연하게 만든다.


2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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