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LO Jun 02. 2023

이말년의 작화

웹툰작가 이말년 씨의 그림을 소위 '못 그리는 그림'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못 그린 그림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게 진정 못 그린 그림이라면 못 그린 그림으로도 흥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사실 그것은 잘 그린 그림이었던 것일까?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좋은 그림인 것인지에 관해서라면 회화의 역사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중세시대에는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좋은 그림의 기준이었다. 모든 것을 신의 산물로 규정하던 시대에서 그 신의 산물을 아주 똑같이 그린다는 것은 곧 신을 경배하는 의미였다. 그래서 정밀한 묘사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이후에 등장하는 인상파는 역으로 대상을 흐리게 표현하는 것이 그 기법이었다. 신의 드리움이 사라진 시대로의 전환이 좋은 그림에 대한 규정을 바꾼 것이다. 중세시대의 시선에 머물러있다면 인상파의 그림은 신의 은총을 거부하는 사파이다.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잘하는 것의 기준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꽉꽉 채우는 것이 과연 뭔가를 잘하는 것인지,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은 일을 또 무조건적으로 잘한 일로 규정할 수 있는지,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더 필요하지는 않은지, 비워서 큰 호응을 얻었다면 채우는 것은 이제 작별해야 하는 태도는 아닌지, 그런 질문들이다.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어떤 편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시대는 흐르고 기준은 바뀐다. 내가 옹호해 왔던 어떤 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옹호할만한 것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 기회주의적으로 세상을 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스로를 비판하는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23.05.31

매거진의 이전글 즉흥과 계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