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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Jul 22. 2023

대화의 클리셰

'클리셰'라는 단어는 영화에서 주로 사용된다. 판에 박힌 듯한 문구 또는 진부한 표현을 카르키는 문학용어다. 영화의 특정한 장르에서, 아니면 장르가 다를지라도 비슷한 상황을 표현함에 있어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대사, 연출방식 등을 말한다. 네이버 사전에는 비판 없이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특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의 대화에도 클리셰가 존재한다. 클리셰로 떡진 영화는 그 만의 특별함이나 차별성이 없어 감상할 가치가 별로 없는 것처럼 클리셰로 가득 찬 대화도 그 가치가 없다. 영화의 특정한 장면에서 클리셰적인 특성이 너무 강하면 그 영화와 호흡하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단지 그 장면 자체를 강요받는 느낌이 든다. 마치 공산품을 사서 정해진 방식대로 사용하듯이 관객의 입장에서 그것을 비판할 기회, 해석할 기회, 내 삶이나 가치관에 투영해 볼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클리셰가 가득한 대화는 그 대화의 현장에 내가 굳이 존재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내가 어떤 말을 어떤 이야기를 하던지에 상관없이 상대방이 이미 정해진 듯한 답변으로 일관한다면 그것은 대화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클리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와 대화하든지 그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든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 자신이 어떤 클리셰에 빠진 것이라 볼 수 있다. 클리셰가 강한 영화처럼 이미 내 안에 고착화된 삶의 이야기가 입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을 뿐이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대한 비판이 결여된 대화의 흐름. 그것은 킬링 타임용 영화처럼 시간을 단지 죽여가고 있는 대화의 모양새다. 무서운 것은 살아온 삶의 양이 계속해서 쌓여갈수록 점점 더 나 자신으로부터 그런 모습을 발견해 가는 것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걸 인지할 때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으로부터 꽤 큰 불쾌감을 느끼곤 한다.


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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