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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Oct 02. 2023

스스로를 위하는 것이 조직을 위한다.

일이란 스스로를 위해 할 줄 알아야 한다. 소속된 조직을 그 기준으로 하거나 그것을 위해서 하는 일은 한계가 존재한다. 그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어쩌면 조직은 그저 숙제를 던져주는 존재에 불과할 수도 있다. 숙제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처리할지는 자기 자신에 달려있다. 숙제를 그저 숙제로 대할 수도 있고 어떤 것을 탐구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숙제를 숙제로만 대하면 단지 하나의 지점을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지만 탐구의 계기로 삼으면 무엇인가 남는다. 자산이 되고 비빌언덕이 된다.


그 기간이 다 다르겠지만 언제고 이곳을 떠날 수도 있다는 전제로 살아가고 일을 해야만 누구를 위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내일 떠날 조직을 위해 일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내일이라도 떠날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나 자신을 위해 일할 수 있는 내면을 만든다. 그런데 그런 마인드가 다시 역설적을 계속해서 조직에 남아있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도 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 일하고 그래서 나 자신에게 계속해서 무엇인가가 쌓여간다면 굳이 떠날 이유도 없어지는 것이다. 세상은 그런 면에서 참 모순적이다. 좇으면 사라지는 것과 버릴 때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


어차피 나라는 사람은 나 자신을 위해 태어나는 것이다. 내가 몸 담는 어딘가는 결국은 잠시 머물고 스쳐 지나갈 하나의 겨유지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나의 인생에서,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영원한 것은 결국 나 자신뿐이다. 그러니까 스스로를 위할 필요가 있다. 이기적으로 구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과업을 나라는 사람의 인생의 차원으로 재해석하고 치환하여 스스로를 돕고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나라는 사람도 결국 조직의 한 부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위하는 것도 결국 조직의 일부분을 위하는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를 위해하지 않는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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