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것은 보고서지 내가 아니다. 비판받은 것은 발표지 내가 아니다. 우리는 내가 만든 산출물과 나 자신을 구분해서 인지할 필요가 있다.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 논리적인 접근과 타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설득력을 높여주지만 그것은 방점을 찍지 못한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하지 못할 이유를 찾자면 한도 끝도 없는 것처럼 어떤 의견이나 안건에 대해 비판하자면 그 또한 한계가 없다. 그것은 논리로 설득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더 이상 비판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설득의 종착지라면 뻔뻔함은 우리를 그 종착지에 데려다주는 무기일 것이다. 뻔뻔하다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이고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비판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성적인 것 같지만 우리의 인식보다 훨씬 감성적이고 난잡하며 앞뒤가 들어맞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복잡계인 세상의 알고리즘을 정확히 알아차리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그 함수의 해를 찾아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숫자를 대입하며 문제를 때려 맞춰 보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던져보는 태도다. 뻔뻔함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태도다. 그리고 그 속에는 내가 던지는 것과 나를 구분하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 내가 던지는 것과 나를 동일시하면 지속적인 시도가 있을 수 없게 된다. 타격을 받아 쓰러지게 된다. 뻔뻔함이란 그래서 중요한 덕목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나 자신을 그 말 그대로 나 자신을 여기고 인지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주저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를 단순한 하나의 객체로 인지하고 계속해서 그것을 던질 수 있다면 시도는 나의 편이 되고 쌓인 시도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더 높은 수준의 산출물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렇게 치면 성공의 열쇠는 '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인지하는 것을 넘어서 이 세상을 초월한 상태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태도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23.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