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LO Nov 12. 2023

괴롭힘은 괴로움의 파도다.

내가 누군가를 해하지 않더라도 단지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해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괴로움에 빠진다. 방관자가 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을 목격하거나 발견했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는 선택지가 발생한다. 목도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개입할 것인가.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개입할 힘을 가지지 못할 때 선택할 수밖에 없는 목도는 스스로를 방관자를 만들고 그래서 괴로움에 빠진다.


누군가를 괴롭힌다는 것은 그래서 단지 그 한 사람을 괴롭히는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 모든 이들에게 어떠한 선택을 강요하게 되고 그 선택에 따라 서로 다른 삶의 무거움을 전가하게 된다.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용기를 발휘하는 결정을 하는 이에게는 두려움을, 방관하기로 결정한 이에게는 죄책감을 선사한다. 그래서 한 사람을 괴롭힌다는 것은 그 주변 모두를 괴롭히는 일이 된다.


사람이 살아있는 순간은 사실 모두 선택의 순간들이다.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기로 선택한 것이다. 모든 순간은 잠재된 다른 대안으로 가득 차있다. 내가 눈치채지 못한 순간에도 우리는 선택을 적립하고 있다. 그 선택의 총체는 우리를 이룬다. 정신으로, 신체로. 그래서 방관하는 것조차 자신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강요받는 선택도 선택이고 그 조차 자기 자신의 삶을 이룬다. 그것은 머릿속에 흔적을 남기고 같은 선택이 쌓일수록 똑같은 선택을 할 확률을 높여가기 때문이다.


나를 이루는 것의 원천은 나의 주변이다. 나쁜 것을 피하는 것은 그것을 그대로 내주면으로 두면 그것이 곧 나를 이루기 대문이다. 괴롭힘을 방관하는 것은 그래서 마찬가지로 괴롭다. 그것이 곧 나이기도 한 내 주변을 나쁜 것으로 채워두는 엄연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선택지가 더 있다면 피하고 벗어나는 것이다. 그 또한 비겁함이란 삶의 낙인을 남긴다. 괴롭힘은 모든 사람의 모든 선택지에서 유쾌하지 않은 삶의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분노가 차오른다. 괴롭힘은 괴롭다. 괴롭힘은 괴로움의 파도다.


23.09.01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벗어나 나를 바라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