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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Nov 12. 2023

물질로서의 인간

집안의 물건이 많아지면 선택은 둘 중의 하나가 된다. 쓸데없는 것을 버리거나, 아니면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것. 필요한 물건을 충분히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진 물건들이 자리할 곳을 찾지 못한다면 적절한 가구를 구매하여 쌓아 올릴 수밖에 없다. 바닥을 가득 점유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바닥은 이동의 기능을 갖기에 무엇인가로 채워둘 수 없다. 그래서 중력을 거슬러 허공에 위치시켜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가구다. 가구는 물리법칙을 거슬러 자연이 제공한 공간을 더 많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인간은 많아지는 물건을 수직의 형태의 가구라는 설비를 통해 쌓아 올리는데 스스로를 쌓아 올리기도 한다. 빌딩과 아파트, 각종 건물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인간을 한정된 지구라는 공간에 계속해서 존재하게 만들기 위해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행위다. 물건은 쓸데없다는 이유로 폐기할 수 있지만 인간은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아닌 이상 폐기할 수 없다. 집안의 바닥이 이동의 기능을 띄어 가득 채울 수 없는 것처럼 움직임과 교류의 공간으로 남겨두어야 할 지표면을 인간자체로 가득 채울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 쌓는다. 철근 콘크리트와 엘리베이터라는 중력을 거스르는 기술을 통해서 군집이 군집 스스로를 정리하고 정돈한다.


공간에는 그 공간이 품을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쓰레기를 수집하는 별난 사람들의 집처럼 공간을 가득가득 채우는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쾌적함과 공간자체의 기능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할 때에 말이다. 아마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도 그 한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간 세상의 기능을 유지한다는 전제 속에서 말이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모이고 비슷한 삶의 수준과 형태를 가지는 사람들이 비슷한 동네와 지역에 모여 산다. 물건도 비슷한 종류끼리 모여 책장, 서랍, 옷장 등에 구분되어 정리되고 그 공간을 점유하게 된다. 인구가 많아질수록 한 사람이 점유하는 공간은 좁아지고 물건이 많아질수록 더 빼곡히 그 물건들을 보관하게 된다. 인간이나 물건이나 별 반 다를 것 없는 물질로서의 속성을 지니고 살아간다.


2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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