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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May 25. 2024

우린 필요한 만큼 먹고 있는 것일까

[3일 차] 비야르 데 마사리페 - 알베르게 JESUS


1일 1식이라는 말이 흔해진지는 이제 시간이 꽤 되었다. 하루에 세 번의 식사를 한다는 삼시 세 끼는 새벽부터 해가 떠있는 시간 내내 논과 밭에서 고된 육체노동을 해야 했던 농부들에게 최적화된 생활양식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것은 현대인에게 그리 적합하지 않은 식사빈도이며 특히 몸의 움직임이 적기 마련인 사무직 근로자에게 더 그렇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만큼을 먹고살고 있는 것일까. 30대 중반을 지나며 기초대사량은 급격히 떨어졌지만 식사패턴은 그대로 가져가니 항시 위장이 더부룩한 느낌을 받는다. 이전 식사의 것이 채 제대로 소화되기 전 다음식사의 음식물들이 투입되니 소화가 제 때 되지 않으며 오장육부가 쉴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식사란, 특히나 한국인에게는 더욱이 단순한 양분의 공급이 아니라 사회적 행동이고 관계의 을 유지시키는 아주 기초적인 공동행동이다. 우리는 언제나 밥 먹었냐 질문으로 안부를 묻고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로 작별인사를 대신하지 않는가. 식사란 때로 양분의 공급이라는 본질적 의미가 완전히 사라지기도 한다.


이 순례의 여정에서 1일 1식을 해보기로 했다. 갖은 스트레스로 육체가 필요해서가 아닌 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먹어야 했던 평소와 달리 이 과정은 나에게 정확히 얼마큼의 양분이 필요한지 알아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느껴졌다.


두 번째 숙소인 비야르 데 마사리페의 JESUS 알베르게에서는 주방을 제공하고 있었고 그래서 식사를 차려먹을 수 있었다. 인근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구멍가게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슈퍼마켓이 있었고 기본적인 식재료와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알베르게 사장님은 처음 숙소를 소개할 때 마트의 위치를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곳에서 컵라면 하나와 6개들이 머핀 한 봉지, 맥주 한 캔과 사과 한 알을 샀다. 어느 나라와 달리 다행히 사과는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그렇게 장을 본 식재료들을 가지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물을 끓여 컵라면을 만들고 사과를 씻어 먹었다. 합리적인 가격의 사과는 너무나도 달콤했고 변변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 컵라면도 나름 만족스럽게 섭취했다. 순례길을 걷는 긴 육체노동  이후에 챙겨 먹는 식사는 그야말로 꿀 같은 맛이었다. 두 가지 음식만으로도 이미 포만감이 느껴져 6개들이 머핀은 그 포장을 뜯지도 않게 되었다.


음식을 욱여넣어야 겨우 그날그날의 마음의 질병이 치유되는 것만 같은 일상과 달리 오히려 이 몸의 가벼움은 만족스러움으로 다가왔다. 고된 순례길의 과정은 폭식을 유도할 것 같지만 오히려 몸의 가벼움을 즐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기름기가 쫙 빠져 담백해지는 듯한 신체. 순례길은 1일 1식 체험의 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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