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썩 나쁘지는 않겠다.

by 글객

과거의 글을 보며 때로 괜찮음을 느낀다. 아.. 혹은 와.. 하며 내가 쓴 글이 꽤 좋다는 생각이 든다. 어휘와 문장감. 간혹 어설픈 문맥과 무책임한 내용 전개의 흔적이 보이기도 하지만 일기장을 넘겨 과거의 나와 만나다 보면 내가 이랬나 살짝 생각이 나는 좋은 글들이 보일 때가 있다. 그건 가끔 작은 경쟁 상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땐 글의 첫마디를 내딛는 게 꽤 망설여진다. 그런 글이 또 나올까 싶은 두려움이다.


미약한 나 자신을 만나는 건 구린 기분이다. 이전과 달리 무능한 자신을 보는 것은 인생의 본질이 성장에 있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사는가?라고 순간적으로 드는 기분. 그럴 땐 인생의 허무감과 심하게는 허망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살아서 뭔 부영화를 볼 것인가? 집에 돌아오며 종종 죽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은 죽고 싶다는 생각과는 다르다. 세상을 만나는 게 두려운 게 죽고 싶다는 생각이라면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은 크게 좋지도 크게 나쁘지도 않은 감각과 인식의 장속에서 느껴지는 허무의 상징적 생각이다. 공허감이다.


나 자신이라는 건, 나 자신을 인식하는 건, 나라고 인식하는 대상은, 결국 내가 만나는 나 자신이다. 타인을 만나 타인을 인식하고 그것을 캐릭터화 하며 범주에 집어넣는 것처럼, 나 자신도 그렇게 똑같이 스스로를 인식한다. 다만 나를 만나는 시간은 끊임없고 영원하다. 미약한 나 자신을 만날수록 나는 미약한 무엇으로 인식되고 반대의 나일 수록 강한 무엇으로 이어진다. 그 비중에 따라 나라는 사람을 스스로 규정한다.


요즘 때로 잠에 빠진다. 하루에 10시간을 자기도 한다. 그것은 대략 피곤하고 졸리기 때문이 우선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약한 밤의 나 자신과 빨리 이별하고, 그나마 총명한 아침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의 비중을 늘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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