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를 지울 때 윤회에서 벗어난다.

by 글객

윤회사상에 대해서 그 핵심을 들었을 때 충격이 신선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많은 것이 시덥잖이지는 상황 속에서 그 개념은 뇌리에 꽤 깊게 박혔다. 그만큼 에너지 있는 이야기였다.


육체는 한 생물의 일생동안 잠시 뭉친다. 그리고 생을 마감하며 유전정보를 다음 세대에 넘긴 후 흩어져 부서지고 썩어 다시 물질이 되고 분자가 된다. 생물과 무생물은 그렇게 우주의 순환 속에서 돌고 돌아 영원히 존재한다.


윤회사상은 이 개념이 정신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이다. 단순히 우리가 죽으면 또 다른 생명으로 번뜩 태어나는 게 아니라 육체가 썩어 없어져 토양을 이루고 그것이 다시 다른 생명의 양분이 되듯, 정신도 죽으며 부서져 지천에 퍼지고 또 다른 생명이 잉태될 때 그 정신을 이룬다는 생각이다. 온 우주에 펴져있는 물질의 양이 제한적이듯, 정신도 유한히 존재하고 순환하며 우주라는 테두리 안에서 영원히 존재한다는 말이다.


해탈의 개념은 이 배경에서 나온다. 만약 우리의 육신이 썩어 다시 토양에 흩뿌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소멸해버린다면 우주라는 공간에 우리 육신을 이뤘던 물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정신에 적용하는 게 해탈이다. 어떤 번뇌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 때 우리 정신은 말 그대로 온 우주에 단 한톨도 남겨지지 않게 되고, 더 이상 새로운 존재를 이루는 데 사용되지 않게 된다. 이는 어떤 우주라는 유한한 개념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꼴이며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반대로 생을 번뇌로 채울수록 내 정신의 파편은 또 다른 생명의 번뇌로 다시 이어진다.


불교의 말씀은 항상 비워냄을 이야기한다. 집착하지 않는 것. 옳고 그름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 죄를 규정하지 않는 것이 번뇌를 지운다. 빅뱅을 시작으로 온갖 불균형과 비대칭이 난무해진 우주 속에서 더 이상 윤회하지 않기 위해서 번뇌를 지워간다.


이미지 출처 : http://www.atzmut.com/seeds-of-rebi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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