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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승 Feb 19. 2021

내가 너의 엄마라서 영광이야

I feel so honored to be your mom. 


지난 1월 20일 미국에서는 제46대 대통령 바이든의 취임식이 있었다.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대선을 뒤로하고, "미국이 돌아왔다, America is back!"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기도 했고, 그의 반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은 국회의사당에서 폭동을 일으키며 전에 없던 혼란과 분열을 초래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에 와서 산 20년이 넘는 생활 동안 이토록 극명한 대립과 사회로부터의 실제적인 위협을 경험한 적이 없는 시간들이었다. 이 모든 사회적 수치의 시간 가운데 '아, 그래도 우리 아직 희망이 있구나.'라고 여기게 한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대통령 취임식 때 있었던 Amanda Gorman라는 Spoken-Word Poet, 낭독 시인의 시, 'The Hill We Climb, ' 낭송이 그것이다.


엄마와 함께 오른 언덕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신의 자작 시인 'The Hill We Climb'을 낭송하는 Gorman의 모습 (사진출처=AP/연합뉴스)


스물세 살의 흑인 여성 Amanda Gorman 은 Harvard College 우등 졸업생 (Cum Laude)이 자 National Youth Poet Laureate으로 지정된 첫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의 빛나는 스펙과 매력적인 외모의 이면에는 싱글맘의 세 아이들 중의 하나로, 열악한 교육 환경의 도시 공립학교에서 어렵게 자라난 유년시절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명확한 발음과 강렬한 어조, 정확한 전달력이 생명인 낭독 시인을 하기에는 가장 큰 걸림돌인 언어장애 (speech impediment)를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2018년에 Harvard Crimson 잡지에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Gorman doesn't view her speech impediment as a crutch — rather, she sees it as a gift and a strength." 그녀는 자신의 모든 제한적 상황들이나 어려움들에 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자신에게 있어서 큰 선물이자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까지도 모두 소중히 여기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줄 아는 그녀가 얼마나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어떻게 그녀는 아직 이십 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흑인 여성으로서, 한 나라의 주류들이 모두 모인 미 대통령 취임식에서, 분열과 차별, 폭력으로 상처 받았던 미국인들에게 화합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언덕 위에서 부르는 새 노래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다주는 이른 아침, 영하의 온도에 성에가 낀 차를 운전하며, Amanda Gorman이 가진 상징성에 대해 계속 생각하다가, 문득 그녀의 시 낭송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던 그녀의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Amanda를 바라보며, "I feel so honored to be her mom"이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 싱글맘으로써 산전수전을 겪으며 키운 딸이 저렇게 온 세계가 보는 앞에서 연설을 한다는 데서 오는 자긍심도 있었겠지만, 그게 다는 아닐 터였다. 그녀들 삶 속에 수많은 차별과 유리벽과 장애물들이 있었음에도, 딸은 세상이 규정하는 피해자로 전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그 딸은 누구보다도 견고한 정체성을 가지고, 혼란 속에 빠진 모든 미국인들에게 "새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녀의 모든 역사를 동행해 준 엄마로서, 그것이 엄마의 영광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때 놀랍게도 내 마음 가운데 일렁이는 한 소리가 있었다. '나도 그래. 나도 윤승이 네가 내 딸이라서 영광이다. 나도 네가 나의 영광이야."라는 음성이었다.


내가 무엇이 되어서, 무슨 학교를 나와서, 무슨 직업을 가져서, 무엇을 성취하고 이룩해서 내가 되는 것이 아닌, 혹은 내가 무언가가 되지 못해서 나로 살 수 없는 것이 아닌. 내가 딸이라서. 내가 나라는 사람 자체로 기뻐할 만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놀랍게도 누군가에게 영광이 되는 일이라는 것.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인 순간, 눈물이 주체 없이 흘렀다. '내가 지금 이런데, 그런데도 영광이라고요? 나는 한 게 없는데. 앞이 안 보이고 어쩌면 이제 끝일 수도 있는데. 이런 제가 영광이시라고요?'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의 성취(performance)가 아닌, 나의 존재(presence)라는 마음의 울림은 내 안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순식간에 확장시켰다. 


"엄마! 왜 울어?" 운전하다 말고 줄줄 우는 엄마를 보고, 뒷좌석에 있던 다섯 살짜리 아들이 깜짝 놀라 묻는다. "어, 아니.. 시온아, 네가 엄마의 영광이야. 너도 엄마의 영광이라고!" 꺄우뚱한 얼굴로 바라보는 아들에게, 눈물범벅인 얼굴로 활짝 웃으면서 외친다. 나의 영광스러운 마음이 언젠가 너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우리가 오르는 언덕은 어떤 언덕일까? 그 어떤 언덕을 앞에 두고 있다 한들, 먼저 '나라는 언덕'부터 오르고 나면 못 오를 언덕, 못 오를 산이 없을 것이다. 엄마로서 먼저 나의 정체성을 알아가려는 몸부림. 아이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흔들림 없이 알려주는 용기. 너 자체만으로도 나는 영광이다 - 라는 진리.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세상을 향한 "새 노래"를 부르게 하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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