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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ia May 26. 2019

언어, 접촉, 커뮤니케이션

영화 컨택트의 원작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고

아는 감정을 다시 느끼려 읽는 책, 위로해주려 읽는 책, 전문 분야에서 지식을 쌓으려 읽는 책, 일상생활에서 지혜를 얻기 위해 읽는 책들이 있다.


테드 창의 과학 단편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이런 책들과는 다르다. 알고 있던 지식과 경험, 감정이 아니다. 새로운 상상과 언어 표현이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책의 내용이 마음까지 가기 전에 머리로 먼저 흘러 머리가 감탄한다. 머리의 감탄이 마음에도 전해져 숨이 턱, 비로소 벅찬 감정을 느낀다.


책을 덮었다. 압도된 상태에서 보인 책의 띠지가 이 느낌을 찌른다.


머리를 쓰는데 가슴이 뜨거워진다


무언갈 읽고 이토록 벅찬 감정을 느낀 건 오랜만이다.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력, 고차원적인 과학 사고에 처음에는 머리가 자극받는 느낌이었다. 분명 생각해보지 못한 영역이었다. 어떤 책을 읽고 지금껏 잘 써보지 않은 뇌의 영역을 자극하는 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머리와 가슴 외에도 방향이 흐르는 신기한 책이었다. '바빌론의 탑'에서 언어가 반대라는 방향을 가지고 있었지 새삼 실감했다. 다양한 반의어와 반대 방향이 다시 같은 위치로 회귀하는 결론을 만나며 인식과 차원이 흔들리기도 했다. 전방위적 언어들에 책이 읽는 나를 회전시키는 기분이다.


특히 '당신 인생의 이야기' 190쪽의 페르마 최단 시간의 원리가 나오는 부분부터 시공간이 모아져 가는 느낌도 받았다. 평면에 써진 글자를 가지고 인간의 머릿속 공간과 몸의 감각을 활용하는 게 이 작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인지. 말을 이해하고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한다는 인식의 변용과 달리 이해하지 못한 이들의 머리 속에 작가의 언어가 구현을 돕고 있었다.


책을 읽으며 문장 사이사이 '이해'라는 공기가 차있다. 사실 2년 전 영화를 처음 보고는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창작 노트 속 저자의 말을 읽고 비로소 의미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인내심을 가지도록.
제군의 미래는 제군을 잘 알고 있으며,
제군이 어떤 인간이든 간에 사랑해주는 개처럼,
제군의 발치로 달려와 드러누울 것이므로.

종종 이 책이 생각나던 순간을 모아보았다.


언어, 접촉,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한달 전, 퇴사를 앞두고 친했던 동료들이 이유를 물어왔다. 미국, 싱가포르, 중국, 한국에서. 불만이 껴 있는 목소리를 굳이 말하고 가고 싶지 않아 애써 좋은 이유로 포장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신기하게도 묻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를 대게 된다.


영화에서 두 대상은 정반대의 물리학을 사용한다. 그러나 결국 물리학자들은 헵타포드의 수학이 인간의 수학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각자가 거의 정반대의 접근법을 채택하고 있기는 했지만 양쪽 모두 동일한 물리적 우주를 기술하는 시스템을 이야기한다. 이 사실을 증명해내고 말았을 때 비로소 느끼는 약간의 동질감과 안도감이 커뮤니케이션에서는 편안함을 가져온다.


동료들 간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회사가 있다. 정반대의 성향이 내포된 언어에서부터 감정어 이성어 사람어 기계어까지. 불편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불쾌해지기도 한다. 채용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강조하며 잘 맞는 사람을 찾는다는 건 유사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는 논리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하다. 조금만 인과 관계나 표현이 부정확하면 "그게 무슨 말이죠? 어떤 것 말씀하시는 거죠? 왜죠?"라는 질문이 바로 날아온다. 그래서 길게 말하지 않는다. 한 질문에 하나씩만 대답한다. 길게 말할 땐 더더욱 모호한 단어를 쓰지 않는다. '이해' '효율'이라는 단어도 상황에 따라 참 모호하다.


그 와중에 무방비 상태에서 감정적인 부분을 얕게 보다가 다친다. 외계 생명체와 인간 사이에서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같은 언어를 다르게 사용하는 인간 사이에서도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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