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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ia May 12. 2019

토요일 오후, 시를 선물 받았다

'나는 기쁘다'고 말하는 시


나는 기쁘다 

- 천양희


바람결에 잎새들이 물결 일으킬 때

바닥이 안 보이는 곳에서 신비와 깊이를 느꼈을 때
혼자 식물처럼 잃어버린 것과 함께 있을 때
사는 것에 길들여지지 않을 때
욕심을 적게 해서 마음을 기를 때
슬픔을 침묵으로 표현할 때
아무 것도 원하지 않았으므로 자유로울 때
어려운 문제의 답이 눈에 들어올 때
무언가 잊음으로써 단념이 완성될 때
벽보다 문이 좋아질 때
평범한 일상 속에 진실이 있을 때
하늘이 멀리 있다고 잊지 않을 때
책을 펼쳐서 얼굴을 덮고 누울 때
나는 기쁘고

막차를 기다리듯 시 한 편 기다릴 때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 쓰는 일일 때
나는 기쁘다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문학과 지성사) 中




5월 11일, 토요일 오후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시 선물이었다.


"나는 기쁘다"

고 말하는 시


내가 시를 받은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말이었다. 


토요일 오후, 

느즈막히 동네 공원에 나와

벤치에 앉아 있었다. 

25도의 날씨와

그늘의 시원함과

벤치의 편안함과 

조용한 공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시 선물 덕분에

같은 제목의 시를 쓰며

이 찰나의 기쁨을

아름다운 주변 풍경을 

들여다본다.






나는 기쁘다

- Alicia  


나무 잎새를 바라보니 바람이 보일 때

하늘의 색이 아래부터 위까지 다르게 물들었을 때

노부부가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갈 때

그러다 멈춰 허리 숙여 꽃을 발견하고 웃을 때

강아지들이 산책길에 새로운 자연을 만나 두리번거릴 때

호기심 가득한 몸짓으로 줄을 버틸 때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기쁘다


공원에 한 시간을 앉아있으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까치가 집을 지은 나무가 어딘지

이른 달이 어디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힘차게 지나가는 자전거와

천천히 한걸음 내딛는 어린아이까지

그들의 순간이 보인다

내가 앉은 아래로 눈을 돌리면 

낮은 곳에 자리잡은 민들레가 한 움큼


따듯하고 눈부신 토요일

동네 공원에 앉아

평화를 느끼고

같은 제목의 시를 선물받아

나는 기쁘다


2019.05.11. 토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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