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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ia Apr 18. 2019

안녕, 찰리 브라운

우연을 행복으로 바꾸는 건

동네 북카페에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미루던 글쓰기를 바로 다시 시작할 만큼 마음을 움직인 책

읽으며 표현하고 싶은 문장과 연결하고 싶은 장면들이 꼬리를 물고 떠오르던 책


바로 만화가 찰스 슐츠의 '찰리 브라운과 함께 한 내 인생'이다. 


북카페를 좋아하는 이유, 그 날의 기분에 맞는 책을 우연히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사실 스누피 강아지 캐릭터로 유명한 이 만화의 주인공이 '찰리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남자아이라는 걸, 만화의 제목은 스누피가 아니라 '피너츠(Peanuts)'라는 걸 최근에 알았다. 


이제 이들이 작은 땅콩들처럼 보인다. (source: peanuts.com)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땅콩'에 대한 애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고전 만화 '피너츠'에까지 닿은 걸

우연히 집은 이 책을 읽으며 행복이 가슴에 먹먹히 차오르기 시작한 걸


그 중심에는 '강아지, 땅콩, 그리고 피너츠(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었다. 


찰스 슐츠는 스누피를 소개할 때 말했다. 

행복은 포근한 강아지
Happiness is a warm puppy

#1 우연히 만난 '강아지'


행복이자 포근한 강아지, 땅콩이를 처음 만난 날은 2018년 9월 4일, 지금으로부터 7개월 전이다. 

좋아하는 동료가 막 입양한 강아지로 태어난 지 3개월 된 땅콩이는 그야말로 아기 천사였다. 


무릎 위에서 잠자는 걸 좋아하는 땅콩이, 사슴을 무서워하던 땅콩이, 내 옷고름을 가져가 물고있던 땅콩이


일주일에 한 번 땅콩이가 오피스에 오면 그 날은 평소보다 10번은 더 많이 웃게 된다. 바쁜 업무 와중에도 땅콩이를 잠깐 쳐다보면 광대가 아플 정도로 미소가 지어지고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예상치 못한 행동(내 옷고름을 조용히 끄집어다가 씹고 있는 땅콩, 사슴 인형을 큰 동물인 줄 알고 무서워하던 땅콩, 그 와중에 사슴 머리에 놓인 간식은 먹으려 애쓰던 땅콩, 열심히 일하는데 바로 옆에서 참 잘 자는 땅콩)을 마주할 때면 이 작은 생명체가 뿜어내는 치명적인 귀여움을 사진으로 남겨 여기저기 전파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개팔자 상팔자 라는 말이 이런거구나! 땅콩이의 업무 80%는 잠자기다. 특히 엄마와 이모가 바쁠 때!


꼭 편안한 침대, 베개, 자기 집 바로 옆 바닥에서 잔다. 땅콩이가 온 날이면 의자를 움직이기 전에 땅콩이가 어디 있나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땅콩이에게 '땅 인턴'이라는 직급을 줬지만 매일 잠만 자서 진급은 수개월째 되지 않았다.



#2 우연히 건네게 된 '땅콩' 선물


땅콩맘은 내가 회사에서 제일 좋아하는 소중한 동료다. 오피스 사람들이 모두 땅콩이를 너무 좋아해 "이번 주는 땅콩이 언제 와요?"라고 쉽게 묻지만 땅콩이가 쑥쑥 자라며 이제는 가방에 넣어 들고 출근하기에 정말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땅콩맘은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땅콩이라는 행복을 매주 데려와준다.


옆자리에 앉는 내가 알아챈 사실은 땅콩이가 오는 날에는 땅콩맘이 모닝커피를 사오지 못한다는 것! 땅콩이가 오는 날 땅콩맘에게 건네는 모닝커피는 소소한 감사 표현이었다. 다른 동료들도 같은 마음인지 땅콩이 수제 간식, 설맞이 땅콩이 한복과 같은 선물을 종종 건넸다. 


미안... 다 엄마랑 이모꺼야


2019년 1월, 화이팅하자는 의미로 땅콩맘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싶었다. 네이버 검색창에 땅콩 선물, 땅콩 인형, 땅콩 모양 소품, 땅콩 캐릭터 등 검색을 해봤지만 생각보다 땅콩 모양 무언가는 많지 않았다. 또 딱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었다.


그러다 발견한 게 스누피가 땅콩을 들고 있는 폰케이스(위 가운데 사진)였다.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 땅콩이 함께 그려진 케이스라니! 땅콩맘에게 선물할 생각에 기분 좋은 밤이었다. 다행히 다음 날 땅콩이도 참 좋아(간식인 줄...)했다. 오른쪽 사진의 다양한 캐릭터가 모여있는 폰 케이스는 'WE LOVE YOU'라는 말이 너무 예뻐 같이 구매했고 오늘까지 우리 둘의 폰케이스는 피너츠다:)



#3 우연을 행복으로 바꿔준 '피너츠'


WE LOVE YOU!  (source: peanuts.com)


만화가 찰스 슐츠(Charles Schulz, 1922~2000)가 원한 제목은 '찰리 브라운'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땅콩들'이라는 제목이 참 좋다. 


그는 회사가 자신의 만화에 붙인 '피너츠'라는 제목을 끈질기게 싫어했지만 '피너츠'라는 제목이 포착하는 작품의 어떤 의미가 있다. 

자그마한 아이의 얼굴을 한 패배자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의 삶은 본직적으로 별 볼 일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매 순간 그 작은 인생들 안에는 고통과 희망의 거대한 우주가 담긴다. 독자들은 '피너츠'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거창하지 않은 말들과 솔직한 표정에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 

이 조그만 '땅콩'들은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무한히 가지를 뻗어 나가는 씨앗들인 것이다.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 옮긴이의 말(이솔)


찰리 브라운의 독백의 경우, 아이의 한마디가 성인의 마음을 파고든다. 


턱을 괸 손동작이 어떤 행동보다 더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source: pinterest)


이 책을 읽고 어떻게 한 장면 장면에서 공감과 위로를 얻었는지 깨달았다. 찰스 슐츠는 스누피의 입을 빌려 인간을 싫어하고 인류를 사랑한다고 유머스럽게 말했지만, 정작 그의 만화 한 컷에는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어린 철학이 압축되어 전해지고 있었다. 


독자가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표지 안쪽의 문장을 보게 만드는 센스, 피너츠답다


우리는 화려한 것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우리가 산 물건들 속에서 실패를 겪으며 끊임없이 분노한다. 

찰리 브라운과 그의 친구들을 괴롭히는 문제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고 우리를 끊임없이 사로잡는 것이다. 

자신과 사회의 관계, 독립된 자아를 구축하려는 욕망, 신경증적 행동에 대한 불안, 자기 운명을 좌우하는 능력을 향한 커다란 갈망 같은 것 말이다. 찰리는 그의 불안감과 패배, 확신과 같은 작은 승리 속에서 우리가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찰리를 통해 우리는 영혼의 부활과 마음의 치유를 경험한다.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 머리말 p.17


며칠 전 오랜만에 같이 쇼핑을 하다가 끝에는 툴툴대고 만 엄마와의 시간이 생각났다. 엄마와의 다툼도 결국 엄마와 딸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사회에 대한 관계, 화려함 속의 물건과 실패, 타인의 시선과 행동에 대한 피로와 분노가 아니었나. 오랜만에 둘이 시간이 맞아 쇼핑을 같이 한다는 것 자체에 기뻐하던 출발할 때의 마음을 잃고 문제에 사로잡혔음을 깨달았다. 화려한 것들에 둘러싸여 소중한 존재를 가리지 말자. 


작금의 삶에서 사람을 가장 심란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 노동자가 장인으로서 자부심을 지니지 못하는 상황을 들 것이다. 

내가 젊은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충고가 하나 있다면, 한 가지 일만이라도 잘하는 법을 익히라는 것이다. 또 거기에 더해서 자신이 가진 직업의 근간이 되는 요소들을 팔아 치워서는 안 된다는 말도 하고 싶다. 

찰리 브라운과 함께한 내 인생, 머리말 p.18


따끔하다. 일반 노동자가 자부심을 지니지 못하는 상황. 내가 느끼는 위기감과 일치한다. 당장은 부족하더라도 경험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배우는 와중에 자부심을 지녀가는 길 위에 서있기를. 지금은 조금 더 인내하고 집중하자.


고마웠다. 오늘 우연히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쓰기까지 내 삶의 일부가 되어준 강아지 땅콩이, 선물, 그리고 땅콩맘까지. 우연히 쌓인 것들이 모여 행복한 경험이 되었다. 앞으로도 피너츠의 장면처럼 주변 피너츠들과 웃고 울고 고민하고 조언을 나누고 또 성장하며 한 가지 일 잘해보자! 내 근간이 되는 나만의 요소들을 성급하게 팔아 치우지 말고.


당신의 옆에 찰리 브라운, 스누피, 피너츠가 있어요



피너츠와 스누피가 더 궁금해졌다면 아래 공식 인스타그램과 공식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만화 컷들을 찾아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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