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의 원천
원주 Museum SAN에서 만난 건축가, 안도 다다오(Ando Tadao)는 새로운 예술 경험을 선물해주었다.
먼저 산속 펼쳐진 하늘과 넓은 공간이 있다. 이 공간을 물, 돌, 나무, 콘크리트, 유리로 채우며 Space, Art, Nature를 담았다. 공간을 걷다 보면, 유독 직선과 사각, 삼각, 그리고 원형의 기하학이 눈에 들어온다. 이 단순하고도 직관적인 기하학이 눈에 더욱 잘 띄는 건 그 도형을 채우고 있는 자연 덕분이었다.
공간 안에서 끊임없이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건물의 끝에 시선이 닿고, 그 끝에서 만난 자연은 하늘인 동시에 건축물 밖의 자연을 바라보는, 건물 안에 놓인 나였다.
안도가 궁금해졌다.
Ando emphasises the association between nature and architecture.
He intends for people to easily experience the spirit and beauty of nature through architecture.
실제로 Museum SAN은 네 개의 윙 구조물이 사각, 삼각, 원형의 공간들로 연결되어 대지와 하늘을, 사람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건축가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한다. 안도는 빛과 물, 돌, 나무, 하늘, 바람을 좋아했다. 그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수단으로 극강의 단순한 건축 재료인 노출 콘크리트를 선택했다.
단정하고 고요하다. 참 좋아하는 도시, 스위스 취리히에서 만난 공공 건축물들이 떠오른다.
자연광이 머무는 층층이 뚫린 공간, 벽돌벽으로 조성한 안정감, 견고한 제 역할을 하는 돌기둥과 나무 손잡이. 곳곳에 숨어있는 기하학.
연이어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이촌 국립중앙박물관이 떠올랐다.
이촌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심장이 쿵쾅쿵쾅 설레는 곳이다. 건물에 들어오면 마주하는 로비에서 항상 강한 설렘을 느꼈다. 오늘은 어떤 보물을 만나게 될까. 그리고 오늘 깨달았다. 나는 대리석과 하늘의 틈 사이로 들어온 빛이 머무는 이 건축물 자체도 좋아하는구나.
파고들면 들수록 안도는 나의 취향이다. 그는 복싱 선수였다. 세계적인 건축가는 자신의 건축을 구현하기 전, 그저 전직 복싱 선수였다. 안도는 1962년부터 1969년까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독학으로 건축을 배웠다고 한다. 특히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건축에 심취하여.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가는 사람에게 예술은 멀리 있지 않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듯 예술도 공부가 필요하다. 그 공부는 감흥과 영감을 만드는 모든 것이 아닐까.
그에게는 세계 여행을 다니며 건축물을 보는 것이 예술 공부였다. 청년 안도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유럽으로 건축여행을 떠나는데 모스크바를 거쳐 핀란드,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을 돌아보고 아프리카 케이프 타운, 마다가스 카르, 인도 필리핀을 경유한 7개월 의 대장정이었다.
그리고 말한다.
"추상적인 언어로 아는 것과 실제 체험으로 아는 것은 같은 지식이라도 그 깊이가 전혀 다르다. 첫 해외여행에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지평선과 수평선을 보았다. 지구의 모습을 온몸으로 느끼는 감동이었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한 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의 지어라'에서
예술의 힘을 믿는다. 대학생 시절, 국립중앙박물관에 처음 가보고 공간과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매달 그저 이끌리듯 들렸다. 그리고 항상 안고 있던 고민의 답을 찾아서 나왔다. 다산 정약용 특별전을 보고는 미래 진로를 정하는데 강한 영향을 받았다. 터키 여행을 다녀온 직후 열린 이스탄불 문명전을 보고는 여행의 감흥을 한국에서 되살렸다. 특히 세상 일이 내 맘대로 풀리는 것 같지 않을 때, 연인과 이별하고 위로받고자 찾아간 곳도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역사 속 흥망성쇠를 보며 나라는 작은 인간의 감정을 희석하고 싶었다나.
그렇게 예술 작품에서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예술이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성이 원천이 된다는 걸 알 때, 나는 삶의 원동력을 하나 더 갖게 된다.
많이 알려고 할수록 예술은 일상으로 들어온다. 20대 초반 국립중앙박물관을 이토록 많이 가보지 않았다면, 전시 해설 봉사를 하기 위해 전시관과 동선 하나하나를 공부해보지 않았다면, 해외여행을 가서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 도서관에 가는 게 이렇게 설레고 즐겁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렇게 예술과 건축물에 대한 나의 취향이 쌓이고 있는 줄 몰랐다.
예술가에게 감사함이라는 감정을 오랜만에 느꼈다. 안도 덕분에 빛이 공간의 일부가 되는 걸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달았다. 그동안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을 보니 유독 빛을 포착하는 사진들이 많았다. 또 돌이 만들어내는 단조로움과 차분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무늬와 반복보다는 무지가 크게 그리는 기하학 구조에 안정감을 느낀다.
이렇게 나는 내 취향에 맞춰 공간을 재창조할 힘을 얻는다. 때마침 새로운 도시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됬으니, 아침에 눈을 뜨면 기지개를 켜며 마주할 창 밖 풍경에서부터, 빛과 자연, 방의 분위기와 구조물을 하나씩 설계해 봐야지.
예술은 이렇게 꼬리를 물며 취향과 창의성을 기른다. 실제 체험과 간접 경험으로 만나는 예술은 영감을 주고, 안목이 되고, 내공으로 쌓인다. 이 과정은 시간이 든다. 시간만큼 값지고 희소한 자원이 없기에 예술이 에너지를 응축해 더 큰 힘을 발휘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상의 직업이 있다. 나의 직업에서 고유한 취향과 예술의 힘을 살려, 어떤 창의성을 발휘해볼까. 추상화 속에서도 새로운 상을 발견하고 감정을 느끼는 인간처럼, 정해진 건 없고 나의 취향을 파고드는 게 출발 아닐까.
건축가로서 안도의 믿음을 지지한다. 취향 저격의 그가 하는 말처럼, 내 주변의 공간들을 현명하게 선택하고 배치하고 가꾸는 안목을 계속 만들어 가봐야겠다. 그 공간이 나를 reform 하도록.
As an architect, Ando believes that to change the dwelling is to change the city and to reform soc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