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스토너는 여러 번 들었다가 내려놓은 책이었다. 책 소개의 내용이 너무 담담해서 고민이 있고 답을 찾고 싶은 날에는 손이 안 갔다. 테니스 레슨이 갑자기 비 때문에 취소된 한적한 토요일 오후, 담담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저기가 대학일세. 자네가 다닐 학교가 바로 저기야.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집안 농사를 돕다가 농업 대학에 갈 기회가 주어진 스토너에게 건네진 이 말. 대학에 가도 되는지 가면 좋은 게 뭔지도 모른 채 대학에 발을 들이는 스토너의 인생은, 그에게 주어지기 시작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는 자신 앞에 펼쳐진 하루 속 배움과 노동과 만남들에 자신의 인생을 조금씩 바꾸고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갈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그저 건물들을 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스토너의 모습에서 자꾸 어린 시절의 내가 보였다.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설렘과 걱정, 긴장감과 두려움을 책이 오랜만에 꺼내고 또 위로해 줬다. 오랜만에 이런 게 소설이지, 이 책을 만났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한장한장 스토너의 삶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이제는 캠퍼스가 회색 풍경에 짓눌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캠퍼스가 그의 시선을 밖으로, 위로 이끌어 하늘을 향하게 했다.
그는 아직 이름을 알 수 없는 가능성을 바라보듯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모두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교정에 드리운 빛과 눈부심에 벅차던 젊음. 원하는 건 다 할 수 있는 젊음에도 위축되고 눈치 보고 그럼에도 안정지대에 벗어난 선택을 조금씩 하며 넓혀나가던 삶의 지평. 각자에게 다른 기회가 다른 모습과 시간으로 찾아왔다. 6년 전, 인상 깊게 읽은 책 '배움의 발견'의 문장과 장면들이 떠올랐다. 두 책은 내가 내 삶에서 기회를 만났을 때 느꼈던 벅참과 먹먹한 감정을 되살려 준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킹스 칼리지를 처음 봤을 때 그것이 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른 이유보다 그렇게 멋진 곳을 내 머리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p.368)
에세이를 끝내고 스타인버그 교수에게 보냈다. 책상 건너편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교수를 보며 나는 내 에세이가 엉망이었다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케임브리지에서 가르친 지 30년이에요. 이 에세이는 그동안 읽어 본 것들 중 가장 훌륭한 에세이 중 하나입니다." 나는 모욕당할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이런 말을 들을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p.375, 배움의 발견)
대학을 배경으로 스토너의 삶과 사건과 선택들이 담담하게 이어진다. 스토너를 읽으며 인생에 주어지는 기회들에 대해 잊고 있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20대에 비해 (가볍게) 하고 싶은 혹은 사고 싶은 것들을 얻는 게 더 이상 어렵지 않을수록, 기회 하나하나가 주어질 때 느끼는 감동이 많이 줄어들었다. 어떤 기회를 놓쳐도 그 간절함과 슬픔이 크지 않고, 때가 아닌가 보다 하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곤 한다. 전전긍긍하기보다 여유로움에 사소하게 틈틈이 행복하지만 가슴 벅찬 감동은 분명 줄어들었다. 스토너의 대학 입학과 학부 생활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나에게도 주어졌던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내 인생을 바꿨던) 그런 벅찬 순간과 기회가 생각났다. 2010년 대학 입학, 2011년 전공 선택, 2013년 교환학생, 2019년 해외 근무까지 나에게 펼쳐질 미래가 어떨지 모른 채 바라고 기대하고 설레고 원하고 노력하던 젊은 시절의 내가 담담한 문체 속에서 자꾸 나타난다.
그는 자신의 장래를 수많은 사건과 변화와 가능성의 흐름이라기보다
탐험가인 자신의 발길을 기다리는 땅으로 보았다.
그는 몸을 바치기로 했지만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곳에서 자신의 장래를 보았다.
스토너의 담담한 걸음은 미래를 고민하며 주저하는 우리의 걸음에 동무가 되어준다. 스토너는 혼자서 나아갔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직접 끌고 발자국을 만든다. 스토너의 발자국이 모여 스토너의 길이 된다. 그는 미래를 알고 선택한 게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가리라 마음먹고 두려움과 설렘을 안기로 선택한다. 젊은 날의 스토너는 결혼을 하고, 조교수가 되고, 아이를 낳고, 남들과는 다른 교수가 되고,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 주변 사람들의 행패를 받아들인다. 받아들이기에 그들은 스토너의 삶을 완전히 망가트리지 못한다. 오히려 스토너는 자신의 속도로 자신이 원하는 정도의 인생을 걸어 나간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답이 정해진 현대 사회에서 스토너의 행동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고 변화에 수동적인 스토너가 로맥스, 이디스 등 주변 사람들로 인해 피해 보는 모습은 사실 우리의 현실을 닮았다. 그럼에도 화가 나거나 답답하지 않은 건 자기중심을 잃지 않는 스토너로부터 오히려 힘을 얻기 때문이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세상이, 분명 실패한 어떤 순간들이 처음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는 순간에서 우리는 나아간다. 우리의 인생관과 삶의 방향이 움직인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간다. 인생 전체를 성실하게 살아도 얼마든지 다른 일에 영향을 받아 삶이 표류할 수 있다. 결혼 성공, 투자 성공, 자녀 교육 성공, 사회적 인기, 정답이 있는 세상에서 스토너처럼 (남들 눈에는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순간순간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삶을 그저 사랑해(살아)보는 모습을 보는게 오랜만이다. 그의 삶은 사회의 기준에 어긋낫지만 실패한 삶 같은건 처음부터 없었다.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1965년에 출판된 책 속 이야기가 60년이 지난 지금의 나에게 내 이야기로 다가온다. 스토너는 조용히 아름다운 소설이다. 우리 모두의 삶이 이런 소설이지 않을까.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