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는 아이
그날의 밤.
쭈그려 앉아 울던 하나의 모습이
뭉근한 안개처럼
호수의 일상 위에 내려앉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보내려 할수록
젖은 옷자락에서 물이 떨어지듯
그날의 파도가 남긴 것이
뚝, 뚝
흘러내렸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려 해도
글자는 자꾸 하나의 말로 덮쳐왔다.
비겁.
그 말은
어떤 의미였지.
문득 사전을 찾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두루뭉술 알고 있는 단어의 뜻이
제대로 마주하면
조금은 덜 무서울지도 몰랐다.
비읍을 찾아
얇디얇은 종이를 조심스레 넘겼다.
'비열하고 겁이 많다.'
겁이 많다.
그 문장이
유난히 또렷하게 남았다.
뭔가 다른 뜻이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그 정도로
자신이 겁 많고 비열하고 졸렬하진 않다고.
꺼져가는 불씨에
간신히 입김을 불어넣었지만
처참히 꺼져버렸다.
하나는 다 알고 있었다.
무심한 척 숨겨둔
진짜 겁 많은 아이를.
엄마를 잃은 여덟 살에
멈춰 선 채
자라지 못한
어린 호수를.
문득,
잊고 지내던
아니, 잊어야 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빠의 얼굴은
눈물마저 얼어붙을 만큼 차가웠다.
엄마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내내
아빠는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엄마의 죽음보다 아빠의 무심한 표정이
더 무서웠다.
그때, 호수는
무서울 만큼 꼿꼿이 서 있는 아빠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입술을 잘근 씹어
불쑥 튀어나오려는 것들을 삼켰다.
그 차가운 하루를
그렇게 견뎠다.
다리를 붙잡고
매달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단 한 번,
발인이 끝난 뒤
장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아빠는
소리 죽여 울었다.
그마저도
창밖을 바라본 채.
그때
창밖으로
남색의 거센 파도를 품은
바다가 보였다.
아빤
그 바다에서
누구를 보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