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남색의 기억

울지 않는 아이

by 박지선

그날의 밤.


쭈그려 앉아 울던 하나의 모습이

뭉근한 안개처럼

호수의 일상 위에 내려앉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를 보내려 할수록

젖은 옷자락에서 물이 떨어지듯

그날의 파도가 남긴 것이

뚝, 뚝

흘러내렸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려 해도

글자는 자꾸 하나의 말로 덮쳐왔다.


비겁.


그 말은

어떤 의미였지.


문득 사전을 찾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두루뭉술 알고 있는 단어의 뜻이

제대로 마주하면

조금은 덜 무서울지도 몰랐다.


비읍을 찾아

얇디얇은 종이를 조심스레 넘겼다.


'비열하고 겁이 많다.'


겁이 많다.

그 문장이

유난히 또렷하게 남았다.


뭔가 다른 뜻이 있을 거라 믿고 싶었다.

그 정도로

자신이 겁 많고 비열하고 졸렬하진 않다고.


꺼져가는 불씨에

간신히 입김을 불어넣었지만

처참히 꺼져버렸다.


하나는 다 알고 있었다.

무심한 척 숨겨둔

진짜 겁 많은 아이를.


엄마를 잃은 여덟 살에

멈춰 선 채

자라지 못한

어린 호수를.


문득,

잊고 지내던

아니, 잊어야 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빠의 얼굴은

눈물마저 얼어붙을 만큼 차가웠다.

엄마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내내

아빠는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엄마의 죽음보다 아빠의 무심한 표정이

더 무서웠다.


그때, 호수는

무서울 만큼 꼿꼿이 서 있는 아빠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입술을 잘근 씹어

불쑥 튀어나오려는 것들을 삼켰다.


그 차가운 하루를

그렇게 견뎠다.

다리를 붙잡고

매달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단 한 번,

발인이 끝난 뒤

장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아빠는

소리 죽여 울었다.


그마저도

창밖을 바라본 채.


그때

창밖으로

남색의 거센 파도를 품은

바다가 보였다.


아빤

그 바다에서

누구를 보고 있었을까.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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