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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Nov 07. 2024

소불고기가 왔다.

일하는 엄마가 멋져지는 찰나의 순간

띠링~ 소불고기 외 6건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


온라인 장보기를 잘하는 그녀들이

가끔 멋져지는 순간이 있다.


풀메이크업과 드레스업을 하고 출근 준비할 때.

일과 관련된 공부를 하느라 집에서 책을 읽을 때.

경제적 부담을 남편과 나눌 수 있을 때.

아이 학원비를 내 수입으로 결재할 때.

퇴근하고 쏜살같이 날아와 저녁 밥상에 소불고기를 올렸을 때.



가끔 멋져지는 순간을 가지고 있는 그녀들.

바로 일하는 엄마이자 아내다.




이 중에서 내가 뽑은 가장 멋진 순간은 마지막에 쓰인 '소불고기'를 밥상에 올렸을 때다. 거실에서부터 밥상에 올려진 소불고기를 보고 기쁨의 댄스를 추고 오는 아이들. 현재 자신들의 만족도가 최상급임을 직접적으로 몸으로 표현한다. 맞다. 소불고기는 우리 아이들을 기쁘게 한다. 거기에 훌륭한 조력자인 김과 계란도 있다. 어디서든 음식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항상 나의 원픽은 항상 똑같았지. 바로 소불고기.



사온 반찬을 올릴 때 몸은 편하지만 가슴 한쪽은 코딱지를 붙여놓은 것처럼 영 찝찝하다. 뭔가 내 손을 거치는 단계가 우리 집 반찬통에 옮겨 담는 행동뿐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물론 맛은 참 맛깔난다. 하지만 소불고기는 집에 있는 야채, 버섯을 조금씩 추가하고 기분 좋은 날은 당면까지 추가해 주면 내 손을 여러 번 거치게 된다. 이러한 행동이 주는 엄청난 착각이 있다.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스스로 이 음식을 정성스레 만든 것 같은 착각. 심지어 맛도 단짠의 조화가 완벽하다.




요즘 이런 마음이 든다. 조금이라도 내 손을 거치게 하고 싶은 마음. 자동화 시대에 무슨 말이냐 싶겠지. 하지만 나는 이걸 계속하고 싶다. 워킹맘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살지만 내 손을 한 단계라도 더 거쳐서 완성되는 것들을 더욱더 찾고 싶다. 물론 일할 때는 최대한 내 손을 안 거치게 하려고 별의별 짓을 다한다. 정보는 챗GPT에게 찾으라 시키기도 하고 맞춤법 검사는 당연히 자동으로 돌리는 나. 하지만 내 아이가 하는 것들은 한 번이라도 내 손으로 직접 어루만져주고 싶은 마음. 나와 같은 마음을 느끼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터. 이거 약간 할매 감성일까. 아니면 홀로 하는 마니또 게임일까. 물론 내가 선택한 그 마니또는 내가 제일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항상 미안함을 느끼는 존재들이겠지. 그런데 어쩐지 마니또들은 자신들이 그런 존재인지 모른 듯하다. 마니또들아 어서 와서 소불고기 먹어라.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워킹맘이 공통적으로 듣는 말이 있다. 대게 여러 번 듣는 말이지만 운이 좋은 사람은 한 번만 들어 봤을 수도.



힘들어서 어떡하니.
아이 교육에는 신경 쓸 수 있겠니.
아이가 아프면 어쩌려고 그러니.
아이 맡길 데는 있고?
살림은 어쩌고.
여자가 나가면 얼마나 번다고.
그냥 아껴 살면 되지 꼭 일을 해야 하니.
아이가 좀 더 크면 일해도 늦지 않는다.


<워킹맘을 대할 때의 완벽한 대화법>이란 베스트셀러 책이 나왔나 싶을 정도로 신기하게 여러 사람들이 같은 말을 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위에 나온 것들이 모두 해결되어야 비로소 일할 수 있는 엄마&아내의 자격이 되니까. 워킹맘은 이러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다. 주위의 도움으로 자격을 갖춘 경우도 있겠고 스스로 노력해서 자격을 갖춘 엄마들도 있을 거다. 또 여러 이유들로 그냥 일을 해야 하는 엄마도 있겠지.



다른 자격증을 딸 때는 엄청 기쁘고 설렜는 데 이건 뭔가 좀 느낌이 다르다. 우리가 따게 된 이 자격증은 기쁨과 설렘도 있지만 불안과 후회, 지침, 부끄러움, 책임, 절망이 들어있는 조금 특별한 자격증이다. 또 이 자격증은 자격을 보장해 주는 유효기간이 없고 갱신 조건도 되게 까다롭다. 아이와 가정에 관련된 일이 터지면 자격증을 즉시 반납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이 불안한 자격증을 취득한 지 7년이 됐다. 물론 중간에 자격증을 반납하고 다시 재발급을 받은 케이스다. 이 자격증은 확실히 이상한 자격증이다. 자격증을 반납했을 때 찝찝함보다는 편안함이 나에게 더 먼저 찾아왔다. 편안함이 감사함이라는 친구도 데려왔는지 순간순간마다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감사함을 많이 느끼는 인간이었던가.



학교 끝난 아이를 바로 안아 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아이의 간식을 든든하게 직접 챙겨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아이와 눈을 맞추고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 감사합니다.
아플 때 옆에서 챙겨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절로 감사일기가 작성됐던 날들.


그런데 몇 개월 뒤 문득문득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자꾸 뭔가가 마음속에서 올라오고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아침 등교를 시킬 때는 풀메이크업과 드레스업을 한 내 모습이 보고 싶었고.

아이의 공부를 봐줄 때는 책과 노트북에 강의 자료를 서칭 하던 열정적인 내 모습을 찾고 싶었다.

식사 준비를 할 땐 퇴근 후 가방만 내려놓고 바쁘게 소불고기를 만들던 나의 모습도 그리웠다.



마치 영화의 한 커트 한 커트처럼 내가 멋져 보였던 그 찰나의 순간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그 이상한 자격증을 재발급 받고 싶은 마음도 점점 커졌다. 그날 나는 오랜만에 소불고기를 주문했다.




얘들아 우리 집에 다시 소불고기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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