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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비련씨 Jul 28. 2023

아련한 애련씨

5. 소소한 행복

 오늘은 외부 회의가 있어 연남동에 위치한 2층 카페에 앉아서 작업 중이다. 미팅은 2시부터인데 점심 먹고 미리 자리 잡으려 밖에서 일하는 중이다. 마포구에서만 13년 넘게 사업을 하다 보니 예전에 있던 곳과 개발되거나 바뀐 곳을 훤히 알고 있다. 벚꽃이 피면 연남동에 꽃터널이 되는 길이 있다. 이곳 주민들에겐 복잡하고 지겨운 행사가 될 터이나, 행인은 그 짧은 시절을 즐기느라 모두 다 행복한 표정을 스마트폰에 담곤 하는 골목이다. 이 골목은 커피집 옆에 커피집이 있다. 세련된 감성에 저마다 맛이 다른 커피를 팔고 있다. 커피를 모르던 나마저도 미묘한 미각차를 느끼게 됐으니 커피집은 예전처럼 약속장소나 잠시 누군가와 만나는 공간을 넘어서 한국의 특수한 경험 문화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오늘 머물고 있는 커피숍은 모던한 작업실 같은 공간이다. 아마도 주택이었던 공간을 모두 터 기둥으로 철빔을 곳곳에 설치했다. 세련된 감성이다. 창 밖엔 7월 말 매미들이 극성스럽게 울고 있다. 오늘은 폭염주의보가 내려졌으니 체감온도는 틀림없이 40도를 넘었을 것이다. 카페 안은 시원하고 쾌적하다. 주인에게 미안하지만 손님이 우리 밖에 없는 것도 마음에 든다.


하루에 한 개씩 쓰기로 한 브런치를 쓰는 지금 순간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예전엔 모르던 섬세하고 사소한 행복이다. 약간씩 다른 커피맛을 음미하며 푸르른 벚나무를 나른하게 내려다보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소소한 행복은 언제나 다음으로 미루곤 하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를 살았었다. 지금처럼 SNS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신문 칼럼이나 잡지 기고된 글을 주로 읽었다. 대체로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를 읽고, 그들을 닮아가며 살아가는 것이 성실하고 건강한 젊은이라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다. 그 시절은 근검절약과 미래를 위해 당분간의 행복은 참아내야 하는 것이 당연하거나 필연적인 조건이었다. 덕분에 나는 돈을 써야 하는 취미를 가져본 적 없다. 세상에나 지금 생각하니 너무나 안타까운 사실인데,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QUEEN이 내한을 했었다. 나와 친한 김유진이 열혈 팬이었기에 기억한다. 물론 나는 그 비싼 공연비를 낼 수도 없었다. 그 이후에도 근검절약했고, 이것이 꼭 필요한지 나 스스로가 설정한 기준에 부합한 지 검증했었다.


나는 문구류를 좋아한다. 그림도 매우 좋아하며, 예쁜 쓸모없는 것들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색연필과 크레용은 어느 나라를 가든 가장 큰 문방구 혹은 화방 같은 곳에 가서 반드시 사 온다. 이런 것을 할 수 있고, 해도 된다는 것에 해방감을 느낀다. 0.3mm 샤프를 좋아한다. 4B 심은 필수다. 좀 더 힘 있는 아이디어 작업을 위해서는 0.5mm 샤프를 쓴다. 4B 샤프심은 부드럽게 종이에 미끄러지며 아주 선명하게 흔적을 남겨준다. 이런 사소한 행복이 좋다. 사실 지금도 커피값은 다소 아깝다. 하지만 카페에서만 되는 작업이 있음을 깨달았다. 오늘 이 카페는 나만 알고 있어야겠다. 당분간... #사장님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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