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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로운 Oct 16. 2020

행복해지는 약, 진짜 있던데요

이제부터 가볍게 생각하는 마음의 감기

"로또에 당첨되면 행복할 거야"

"이 시험에 합격하면 행복하겠지"

"서울에 집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20년 후의 나는 행복했으면"

"우리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단다"


흔하게 오가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담은 문장이다. 어느 랜덤한 시점, 그 미래에 존재할 행복을 위해 우리는 희망을 가진다. 그리고 그 미래가 언젠지는 몰라도 행복이 대가로 따라올 거라 예상했던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하면 나는 영영 행복하지 못할 거라고 좌절하거나, 불행하다 하기 쉽다. 


놀랍게도 행복을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행복해지는 약이 실제로 존재하니까. SF소설이나 가상현실에서나 나오는 이야긴 줄 알았는데, 그것은 이미 한 골목 건너,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공황장애 증상이 나타난 날, 난생처음으로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거부감이 없지는 않았다. 정신건강만큼은 건강하고 단단하다고 자신하던 내가 이 곳에 발을 들여놓게 되다니. 


"그동안 정말 많이 힘드셨겠네요"


내 검사 결과를 살펴보던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였다. 상담이 필요하다면 상담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약으로도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고 하셨다. 일상생활도 충분히 유지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 했다. 차분한 목소리와 분위기, 그리고 내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잔뜩 구겨놓은 종이들이 붕붕 떠다니는 듯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세 달이 지난 지금, 나는 행복해졌다.


처음엔 그랬다. 이 고통은 오롯이 나만 느끼는 것이고, 마음속 어딘가가 고장 난 것 같아서 다시는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면 앞으로 이 무거운 기분을 안고 살며 정신과를 오랜 시간 다녀야 할 것 같았다. TV나 기사에서만 접한 연예인 누구의 우울증, 죽음까지 몰고 가는 끔찍한 것, 뭔가 걸려서는 안 될 것에 걸린 느낌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정말 간단하게, 아주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내가 지켰던 것은 딱 세 가지였다.

1. 약을 빼놓지 않고 먹는다

  신경정신과 약은 사람을 멍하게 만든다거나, 부작용이 있다거나,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대중에 흔하게 퍼져있는 우려라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의학에 대해 1도 모르는 일반인이고, 전문가인 의사 선생님은 더 잘 아신다. 그런 우려가 없는 약으로, 가장 순한 약으로 치료를 시작한다. 약이 효과가 없을 경우 다른 약으로 변경할 수는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처음 처방해주신 그 약으로 오늘까지 왔다. 처음 몇 주는 세로토닌 약과 함께 소량의 보조제 역할을 하는 신경안정제를 처방해주셨다. 잠을 잘 자지 못했는데, 그때부터 수면 패턴이 돌아왔다. 그러자 즉시 신경안정제는 끊게 되었다. 세로토닌 약은 먹은 즉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천천히 나의 세로토닌 수치를 정상으로 올린 뒤 유지하는 형태로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 과정이 평균 3개월이 걸리고, 이후 6개월 정도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해야 이후 약 없이도 호르몬의 정상수치가 유지된다고 했다. 자기 전 한 알만 복용하면 되고, 빼놓으면 안 된다. 

2. 금주한다.

  알코올은 공황장애 증상과 불안장애 증상을 유도하는 물질이라고 했다. 우울한 상태를 악화시키는 물질이자,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절대 좋을 것이 없는 것이니, 금주한다. 

3. 단순하게 생각한다.

처음 두 가지, 약 먹기와 금주는 의사 선생님과 약속한 것이었고, 세 번째 단순하게 생각하기는 나 혼자서 시작 한 것이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거리들이 따라온다. 나를 힘들게 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나를 자책하게 되고, 우울해진다. 그러다 아무런 의도가 없었을 상대방의 행동과 말까지도 나를 공격하는 의도로 해석하는 순간까지 이르게 된다. 총체적 난국이다. 그래서 시작했다. 단순하게 생각하기. 


생각을 안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미 일어난 일들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다. 걱정을 멈춘다.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을 한다. 단순한데 성취감이 느껴지는 핸드폰 게임을 한다. 500피스 퍼즐을 맞춘다. 피부로 느껴지도록 기쁘고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들에 집중한다. 예를 들면 우리 강아지 예쁜 눈 감상하기, 보들한 털 만지기. 이불속이 제일 좋으니까 이불속에만 있기. 싫은 것들을 억지로 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무엇이든 내가 좋은 것을 먼저 생각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순간 세상이 평화롭다. 하늘도 예쁘고, 바람도 좋다.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매주 월요일마다 가던 정신과에 이제 2주 텀을 두고 가게 되었다. 그만큼 내 상태가 안정기에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정상보다 두세 배는 높았던 온갖 불안과 우울을 나타내는 수치들이 꽤나 정상 범주로 돌아왔다. 처음 치료를 시작하던 날, 의사 선생님은 딱 30일 정도 지나면 바닥까지 떨어진 세로토닌이 80-90프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증상이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나타나다가, 어느 날은 두 번이 되고, 한 번이 되고, 한 번도 그런 적 없는 날들이 계속됐다. 어느 날은 갑자기 꿈을 꾸고 일어나서 두근거리고 숨을 못 쉴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날은 불안한 감정을 일으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치료에 따라 증상의 빈도수가 줄어드는 과정이었을 뿐, 예전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다시 잘 살고 있다. 아침에 눈 뜨면 몸이 가뿐하고, 하늘도 맑고 차가운 공기에 설레기도 한다. 새롭게 하고 싶은 일들이 생겼다. 곁에는 세상을 온통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는 사람이 있다. 물론 사무실은 아직도 싫고, 사람들도 부담스럽고, 일은 재미없고 경쟁은 지치지만 어쨌든 출퇴근은 잘 해낸다. 감기일 뿐이었다. 어쩌면 감기보다 더 쉬운 마음의 감기일 뿐이다. 




주변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아진다. 예전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혼자 무거운 마음을 앓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무리 주위 사람들이 도움을 줘도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고, 또는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도 나아지지 못할 때가 있다. 모두가 어려운 세상이다. 누구나 사람에 치여, 일에 치여,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폭탄 터지듯 터지는 사이 인생에 갈리고 갈려서 마음을 다친다. 흔한 일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된 사회에 풀리지 않는 문제는 없다. 행복도 약으로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겪어 보지 못한 힘든 일들이 해일처럼 덮쳐도 행복이 그렇게 멀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골목 골목, 어느 동네를 지나 자리한 병원에 좋은 의사 선생님들이 계신다. 혼자 앓지 않고 병원의 문을 두드렸으면 한다. 약은 나를 지옥 같은 우울함의 구렁텅이에서 빼내 줄 것이다. 단단하게 해 줄 것이다.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서는 어떤 문제도 헤쳐나갈 수 있다. 내 앞의 한쪽 문을 닫더라도 다른 문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 문을 열어볼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하게 될 것이다. 


혼자 고통받는 사람들이 줄었으면 좋겠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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