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의 단상
퇴근 후 엄마와 통화를 한다. 매일 한다. 따로 나와 살면서 든 버릇이다. 가족들은 아프지 않고 별일 없는지, 오늘 기분은 어떤지 확인한다. 엄마를 통해 다른 가족들의 소식도 듣는다.
오늘은 오래전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와 살던 까만 개가 시골 큰아버지댁에서 몇 개월 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목이 메었다.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 곁을 지키던 조용한 까만 개. 할머니가 쓰러지신 날 미친 듯이 짖어서 위층에 알린, 할머니를 구한 기특한 녀석이었다. 누구든 다가가기만 하면 배를 발랑 뒤집어 까는 사람 좋아하는 놈이었다. 잠깐 있다가 돌아설래도 주전자 끓는 소리 내며 삑삑 대고 서운해하더랬다. 가지 말고 더 예뻐해 달라고 따뜻한 몸을 무겁게 갖다 대는 정 많은 친구.
그러면서도 청량리 뒷골목, 그 오래된 동네와 90세의 작고 주름진 할머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모를 가진 개였다. 그 모습이 꽤나 이질적이어서 낯선 조선 땅에 똑떨어진 외국인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새카만 털 위에서 더욱 반짝이던 눈을 보면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그 작은 집, 현관 앞, 할머니의 목소리가 세상의 전부였는데, 그 개의 두 눈 속에는 우주가 있었다. 그 착한 눈동자 속에 사랑을 애원하는 우주가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큰아버지가 혼자 남은 까만 개를 시골로 데리고 내려가셨다. 그 뒤로 까만 개를 한 번 정도 밖에는 볼 수 없었던 나는 말로만 소식을 전해 들었다. 청량리 어느 옛날 집에서 벗어나 온통 산과 바다가 앞뜰이고 뒤뜰인 집에 살았다고 했다. 목줄을 풀어주면 텃밭과 뒷산을 신나게 쏘다녔다고 했다. 동네 친구들 만나 돌아다니면서 원 없이 놀았다고 했다. 원체 태어나기를 사냥개로 태어났기 때문에 행복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날아다니듯 누비던 동네를 잘 뛰지 못하더니, 점점 기력이 없어지던 몇 달 뒤, 결국 떠났다고 했다.
이어나가던 말을 멈춘 엄마처럼, 그 까만 개의 소식을 들으면서 나도 울컥 눈물이 올라왔다. 분명 행복하게 살다 갔을 텐데, 내 기억 속에는 작은 방에서 가지 말라고 낑낑 올려다보던 그 짠한 눈빛이 먼저 떠올라서인지. 그 작은 방에서 기억을 잃어가던 할머니가 겹쳐져 생각이 나고, 할머니가 떠나시던 날도 생각이 난다. 먼저 가신 할머니를 만나 지금은 곁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