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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바보 아빠의 딸로 산다는 것

by Nancy

내가 자라던 시절만 해도 딸바보 아빠들이 조금씩 생겨나던 때였다. 요즘은 딸바보 아빠도 많다고 하던데 왜 나의 아빠는 아들바보 아빠인지, 왜 나는 아들바보 아빠의 딸로 태어난 건지 늘 해결책은 없는 고민이 나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렸을 때 엄마가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아버지는 넉넉한 형편도 아니니, 오빠만 낳고 자녀계획을 마무리하자고 했는데 엄마가 원해서 나를 낳으신 거라고 했다. 그런데 널 낳기를 너무나 잘한 것 같다고. 너 같은 딸이면 난 열 명이라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나를 낳아서 너무 좋고 다행이라는 엄마의 말씀은 감사했지만 그 대화 이후로 아버지는 나를 원하지 않으셨구나, 그래서 그러셨구나, 라는 생각만 내 가슴속에 남아있었다.

삘삘이, 삘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나를 불렀던 별명이다. 오빠가 놀려서 내가 화를 내거나 울면 잘 운다고, 별것 아닌 것으로 운다고 놀리며 이런 별명을 지어주셨다. 엄마는 공주라고 부르는데 아버지는 삘삘이라니. 이런 온도차는 무엇. 엄마가 예쁜 이름 놔두고 왜 그런 식으로 부르냐고 하지 말라고 말리셔도 재밌다며 오빠와 아버지는 나란히 나를 놀리기를 좋아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화내는 모습이 나름 귀여워서 그랬나, 하고 쿨하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어렸을 때는 너무나 싫고 수치스럽게까지 느껴졌다.



오빠가 용돈을 달라고 하면 흔쾌히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서 주시는데 내가 달라고 하면 잘 주지 않으셨던 기억이 있다. 화가 난 나는 며칠 간 아버지와 대화를 하지 않기도 했다. 오빠는 소중한 아들이고, 난 원하지 않았던 아이라서 나에게 이러시나 하는 생각이 알게 모르게 내 마음속에 계속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독서실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집으로 올 때도 늘 엄마가 마중을 나오셨다. 어떤 날은 엄마가 피곤해서 아버지한테 마중 나가라고 얘기하면, 알아서 오는데 무슨 마중이냐며 방에 들어가 쿨쿨 주무셨다고 투덜대시던 엄마의 모습도 기억난다.



성인이 되어서도 친구들과 술자리를 할 때면 유독 아버지에게 전화가 자주 오는 친구들이 있다. 언제 들어오는지 물어보시거나 일찍 들어오라는 독촉 전화. 친구들이 귀찮다고 투덜대기도 했지만 은근히 부러웠다.


아들바보 아빠를 둔 나는 딸바보 아빠를 둔 딸들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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