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편과 산다는 것
올해 상반기에는 5월과 6월, 두 번의 황금연휴가 있다.
날 좋은 봄, 이 연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5월이니만큼 부모님 댁은 찾아뵈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포항에 살고 시가는 광주, 본가는 부산이라 보통 때의 주말이라면 한 번에 클리어하기는 쉽지 않지만 연휴라면 가능하다.
그래서 5월 연휴에는 부모님을 찾아뵙고, 6월 연휴에는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나는 엄마에게 그때 갈 것이라 알렸으나, 남편에게 물으니 어머님께 아직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며칠이 지났을 무렵.
- 다솜이(시누이)가 5월 9일에 보자는데?
- 그날? 금요일인데? 우리 일하는 날인데?
- 10일 토요일에 다솜이가 시댁을 가나 봐. 그래서 그 전날 보면 좋겠다고. 부모님이랑 다 같이.
- 시댁을 가는데 부모님은 왜 같이 오시는데? 어디서 보자는 말인데?
- 대구 근처쯤에서 숙소 잡아서 말이야.
시누이의 시가는 진주이다. 광주에서 진주 가는 길 어디쯤이 포항과 광주의 중간쯤이라 전에도 펜션을 잡아 가족만남을 한 적이 있다. 아마 전처럼 그렇게 모임을 하자는 말인 듯했다. 시누이는 부부가 함께 육아휴직 중이라 금요일이라도 가능했을 것이다.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게다가 우리는 3일에 가자고 합의도 해놓은 상태였는데 갑자기 9일이라는 선택지가 나오니 당황스러웠다.
평일이기 때문에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가야 했고 우리들의 테니스 강습, 아이의 축구수업 등 계획된 일정들도 있었다. 나는 이미 엄마에게 5월 연휴 때 가겠다고 말을 해놓았는데 이렇게 되면 한 번에 양가 행사를 해결하겠다는 나의 계획도 틀어진다.
2주 연속 가족모임을 할 생각을 하니 피로감도 느껴졌다. 나로서는 썩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이런 생각들을 얘기하며 그럼 2일이나 3일은 어떠냐고, 그날은 다들 가능한지 가족들에게 한번 물어보라고 했다.
그때부터였다.
남편은 동생가족이 연휴 때 여행 가는 거 아닐까, 우리가 원하는 날은 방이 없겠지, 다들 안되니까 9일로 잡았겠지 등등.
이렇겠지 저렇겠지 추측하는 얘기들만 늘어놓으며 정작 가족 단톡방에 묻지를 않았다.(나는 어떠한 일을 계기로 시가족 단톡방멤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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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가족행사를 진행하며 이런 일의 반복이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남편은 이것을 의논이라 표현했다.
나는 순진하게도 정말 의논인 줄 알고 내 의견을 얘기해 보면 남편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가족들에게 얘기해보지도 않고, 차단해 버렸다.
나는 왜 얘기도 안 해보냐고, 우리가 좋은 날은 어떤지 말도 못 해보냐고 폭발해 버렸다.
무조건 연휴 때 만나자는 게 아니라 얘기해 보고 안된다면 나도 양보할 수는 있는데, 당신의 문제는 우리 가족의 의견은 제안도 안 해보고 나한테 시가식구들의 결정사항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엄마가 이날 좋다고 하시는데 좀 따라줬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양해를 구하라고 말했다. 대놓고 일방적이고 싶지는 않고 겉으로는 의논하는 척하고 싶은 건지.
남편은 내가 폭발하는 이유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시가와의 만남이라 예민하게 군다고 했다.
나는 정말 예민하게 구는 게 누군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들과 다른 의견을 제안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전전긍긍하는 게 누군지 모르겠다고.
언성을 높인 다툼 끝에 결국 남편은 시누이에게 5월 2일은 어떠냐고 물었고, 시누이는 숙소 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거봐라, 내 말이 맞지 않냐고 기세등등한 남편을 보니 마음 한구석에서 분노가 가득 차올랐다.
당연히 남편은 마침 연휴 때 우리가 찾아뵐 계획이었다는 얘기는 1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계획과 합의는 시가 식구들의 연락 한통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계획은 없었던 것처럼.
다툼 이후로 남편과는 냉전 중이다. 싸움 끝에 간단히 미안하다, 알겠다로 남편은 얼버무렸지만 진정한 이해는 없다고 여겨졌고 이러한 패턴의 반복으로 지친 나는 여전히 남편과 대화하고 싶지 않은 상태이다.
결혼이란 시댁 식구들의 대변인일 뿐인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면 내 선택은 달랐을까.
결혼은 내 가족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한 과거의 나를 원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