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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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이해해주기를 바랄 것이다.

최소 내가 사랑한 만큼, 나도 사랑받고 싶은 것이 당연할 거다. 그게 공평하니까.

그런데 임지형과 결혼하면서 이 부분이 많이 달라졌다.


사랑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

두 사람의 관계 역시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애초 서로 다른 환경, 서로 다른 가치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온 개체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엮여 ‘결혼’이라는 계약 안에 들어오게 되는데. 공평과 평등은 개뿔.


흔히 결혼을 2인 3각에 비유해서 아름답게 표현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거 아니다.
냉정히 말해서 혼자 가면 더 빠르게 그리고 더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거리를, 둘이서 악전고투를 벌이며, 더 늦게 그리고 고생스럽게 가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는 거다.

게다가 해보니까 실제로 그렇더라.

그럼 결혼한 거 후회하느냐고 물어볼 사람도 있을 거다.

아니. 후회하지 않는다.

내 경우에 분명 불평등하고 불공평한데 그걸 다 극복하게 만들 만큼 굉장한 힘을 임작갑에게서 늘 받게 된다.

(아마 임작갑도 내게서 그런 걸 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분명. 그럴 거다. 아마도. 음. 그랬으면 좋겠다.)


2인 3각이라서 뒤뚱거리고, 혼자 가는 것보다 느리고 불편할 수 있지만.

혼자서 견딜 일을 둘이 같이 견딜 수 있으니 덜 외롭고, 덜 지쳤다.

엄밀히 말해서 임작갑이 외로울 틈을 주지 않았고, 지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뭘 그렇게 시키는 것이 많은지… 근데 또 하다 보면 할만하더라. 행보관인가.


언젠가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이 있다.

“다시 태어나도 임작가님이랑 결혼할 건가요?”

멱살 잡았다.

대충 행복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꼭 결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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