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상자를 못 봐서...

100개의 글쓰기 28

by 김민성


진짜다. 안보였다

“거짓말하지 마!”


전화기 너머로 아내는 소리 지르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사실인 것을.


그러니까 얼마 전에 아내가 집에서 잠깐씩 글 쓰겠다고 홈플러스에서 간이 테이블과 의자를 샀었다. 처음엔 거기서 몇 번 글 쓰더니, 이내 불만이 터지기 시작했다. 엉덩이가 아프다, 책상이 마음에 안 든다, 지구가 둥글다 같은 일상적인 불만 말이다.


그러려니 했다. 결혼 후 나는 오른쪽 귀로 들어오는 불평과 불만을 왼쪽 귀로 흘러나가게 하는 법을 나날이 깨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해결책을 쿠팡에서 찾기로 했던 모양이다. 쿠팡에 돈을 줬더니 배송비도 받지 않고 책상과 의자를 보내줬다며 무척 기뻐했다. 그리고 밤 12시에 단호하게 명령했다.


“내일 아침 눈 뜨자마자 조립해놔”


당연히 아침에 눈뜨자마자 조립했다. 건담 조립으로 단련된 내게는 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심혈을 다해 책상과 의자를 조립했다. 다행히 부품이 간단해서 볼트가 남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뒤늦게 일어난 아내는 무척 만족해했다. 아내가 좋으면 나도 좋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나는 집에서 나왔고, 아내는 아마도 글을 썼을 것이라고 추정해본다.


그러다 점심 무렵 전화가 왔다.


“인간아!! 그냥 나갔어? 엉?!”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전후 맥락 없이 소리 지르는 일은 아내의 일상이기에 이제 별 이상하지도 않다. 이럴 때는 그냥 조용히 대답하면 된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어? 안 들려? 자기야? 여보세요?”


그렇다! 안 들리는 척 하기!! 아내의 날카로운 예봉을 막는 꽤 잘 통하는 방법이다. 웃거나 하면 바로 걸리기 때문에 길게 말하면 안 된다. 그냥 차분하고 단순하고 일상적인 목소리로 대답해야 한다.


“여… 여보세요? 이상하네… 잠깐만 내가 다시 전화할게.”


“어.. 알았어.”


통했다. 이제 아내는 내가 전화하기를 기다리게 되어 있다. 한 10초 정도 기다렸다가 전화한다.


“여보세요? 들려?”


“어. 들려. 아 진짜. 자기 전화가 이상한 건가?”


“(웃으면 안 된다! 웃으면 안 된다!!) 어. 그런가 봐. 왜 전화했어?”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아내가 전화한 이유를 물어봤다.


“아. 야~ 너 책상 조립하고 상자 버려야 할 거 아니야.”


“????? 응?????? 뭔 상자??????”


아… 그렇다. 아까 밖에 나올 때 책상 배송할 때 왔던 큰 종이 상자가 밖에 있었다. 아마 아내가 내놓았던 모양이다. 아무 생각 없이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온지라 못 봤다.


“헐! 그거 버리라고 문 옆에 딱! 내놨는데… 그것이 안보였다고?”


“(지금 생각하니 보였다. 그런데 그것뿐이다. 그냥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봤다고 하면 혼날 거다.)응? 뭔 상자??? 뭐 있었어????”

“아니 진짜 그게 어떻게 안 보일 수 있어? 응? 그 큰 상자가 안 보이는 것이 말이 되냐고!”


말이 된다. 나는 그거 그냥 지나쳤다. ‘버려야 할 상자’로 보지 않고 ‘그냥 거기 있는 대상’ 정도로 인식했을 뿐이다. 의미가 없이 보았기에 사실은 안보인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여기서 밀리면 ‘클났네… 다 죽어…’ 일뿐이다.


“어. 못 봤어. 상자 내놨었어?”


“세상에 닝겐아 그걸 못 보냐? 진짜 니는 신기해야~ 아우.”


씩. 살았다. 여기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끝난다.


“날씨 좋다. 운동하러 나가라…”


“그래? 알았어… (블라블라블라)”


생존은 언제나 옳다. 핫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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