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글쓰기 30
아내의 이름 앞에는 ‘동화작가’라는 규정된 이름이 붙는다. 내 이름 뒤에는 잘해야 ‘씨’나 보통은 ‘아’가 붙을 뿐이다. 김민성씨, 민성아 정도. 그래서 사실 아내가 좀 많이 부럽다.
친구 영진이랑 차 타고 가다가 키득거리며 아무것도 아닌 나에 대해 떠들었었다. 10년을 중고등부 아이들 대상으로 설교했지만, 그뿐이다. 나는 이걸 전문화시켜 나를 규정할만한 무엇으로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격’으로 인정받을만한 무엇이 아닌 경험일 뿐이다.
이룬 것이 없다. 아무것도 아니다. 텅 비어있다. 거기에 바닥은 쩍 갈라져 있다. 이런 질척한 우울감은 꼭 혼자 있을 때 찾아온다. 기분이 좋거나, 뭔가에 호기심을 느껴 집중하고 있을 때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아내와 싸우고 마음 상해있을 때, 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앉아 있을 때, 컨디션 난조로 슬럼프일 때 찾아온다.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지고, 마음속에 웅크린 덜 자란 아이는 낡은 꼬챙이로 예전에 덮어두었던 부끄러운 시간들의 기억을 들춰 쑤셔댄다.
그만 좀 하라고 말할라치면 서늘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무시하고 달군 부지깽이로 가슴 한 구석을 뒤적거려 분노의 불씨를 찾는 기분이 든다.
다이소에서 천 원 주고 산 향을 하나 꺼냈다. 라이터가 없어서 겨울에 쓰고 아직 넣지 않은 선풍기형 난로를 켰다. 철망 사이로 향을 집어넣어 옹색하게 불을 붙였다. 향 끝이 빨갛게 달아올라 연기가 피어오른다. 남자 셋이 나와 떠드는 팟캐스트 하나 틀어놓고 향 끝을 멍하니 보고 있다.
저게 다 타서 재가 되면 이딴 지질한 생각 그만해야겠다.
아내 몰래 사놓은 중국산 3d 퍼즐을 조립하면서 마음을 다잡어야겠다.
일하기 싫어서 이런 거 아니다.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