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품평회

100개의 글쓰기 32

by 김민성

어머니가 입원하셨다.

나이 들면 몸 여기저기 신호가 온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신다. 한편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마음은 좋지 않다. 검사를 위해 금식하셔야 하고, 수액을 맞느라 주사 바늘 꽂힌 팔을 보니 무람없이 눈물이 나려 한다.

얼른 천장을 한 번 쳐다 보고, '그랑께 좀 쉬시랑게 아들 말을 안 듣소!'라며 타박한다.


8인 병실의 시간은 무료한 듯 하지만 또 의외로 다채롭다. 어르신들이 아침을 드신 후 부산하게 움직이고 침대에 걸쳐 앉아 심심파적 이야기를 꺼내신다. 장소가 병원인 만큼 아픈 이야기가 주된 꺼리다. 나는 여기가 이렇게 아팠다. 그쪽은 아무것도 아니고 내가 더 아팠다. 말 마라 나는 죽을 뻔했다. 가만히 들으니 무용담이다.


울 어머니는 저렇게 아프신 적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어머니를 슬쩍 올려다보는데, 뭔가 부러운 표정이다. '엄니 저라고 안 아프셔서 고맙소잉~'라고 조용히 소곤거렸더니 피식 웃으신다. 당신도 멋쩍었는지 두 눈을 찔끔 감으며 웃으시며 '그라냐?' 소곤거리신다.


이야기는 어느새 병원 평가로 넘어갔다. 이미 여러 병원 입원 경험을 갖고 계신 2번 침대 어머니께서 품평을 시작하신다.


"아따. 여기는 시설도 좋고, 다 좋은디 밥이 맛이 없당께. 으째 이라고 간을 못맞춘가 모르겄어."

"그랑께. 나도 그래가꼬 영감한테 집에서 짐치 잔 가져오라 해브렀어."


맞은편 7번 침대 어머님께서 맞장구를 쳐주신다.


"AAA병원은 가 봤능가? 간호사들이 뛰뛰해가꼬 가기가 싫드라고."


5번 침대 어머님께서 이야기를 받으신다. 그러자 다시 2번 침대 어머님께서 답하신다.


"잉. 거기. 가봤제. 밤에 아파가꼬 잠을 못자겠다고 으뜨케 좀 해주랑께 쌩콩하니 알았다고 하드만 뭐 별로 해주도 안하더라니까. 못쓰것드만..."


이런 분들은 늘 이야기를 어찌나 재미있게 하시는지 듣고 있으면 마음이 쑥 빨려 들어간다.


"앞전에 RRR병원 갔는디, 와따 거기 물리치료 선생이 여잔디 아조 잘해주드만... 그란디 거기도 밥이 배려브렀어. 내가 영양실조 걸려블것드랑께. 그래가꼬 내가 막 의사선생하고 담판을 지어브렀어. 그랑께 쫌 나아지드만~"


"그래? 그라믄 다음에는 그리로 가야것구만. 나는 밥은 괜찮은디 으찌나 다리가 쑤신가 모르것당께. 물리치료 잘한다믄 글로 가야것구만."


5번 침대 어머님의 말씀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린다. 4번 침대에 누워계신 울 어머니도...
에... 엄니... 그냥 병원 안 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이요.


3번 침대 어머님이 갑자기 소리를 줄이더니 생소한 이름을 말한다.


"맞다. 긍께 이번에 손00선생이 이리로 왔다 그러던데?"


병원 품평 전문가로 보이는 2번 침대 어머님께서 곧바로 말을 받는다.


"아녀, 그냥 이름만 온 거여~"


"잉? 그것이 된당가?"


"그랑께 그 양반이 나이도 있고 그래가꼬 환자는 을마 보도 안 해. 다 현수막 걸어 놓고 광고 할라고 그란거여."


"잉. 그라구만..."


"오메~ 권사님! 아직 마취 안풀렸응게 자믄 안돼! 아들아 느그 어무니 아직 자믄 안된다잉!"


누워계신 어머니께서 살짝 눈을 감으셨던 모양이다.

얼른 어머니를 보니 괜찮으시다.


병실 어머님들의 병원 평론 듣다 보니 새로운 세상을 보는 느낌을 받았다. 간호사 하나, 병원 밥 하나, 의사 하나 하나 이토록 잘 알고 평가할 줄이야...


그렇게 한참 수다를 떨더니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그리고 잠시 후 간호사들이 돌아다닌다. 의사 회진 시간은 아니고, 간호사들이 돌아다니며 불편한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 시간인 모양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활발하기만 했던 어머님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 뚝 떼고 세상 아픈 모습이다.


"엄마. 아파요? 괜찮아요?"

간호사의 질문에 힘 빠진 목소리로 2번 침대 어머님께서 대답하신다.

"잉 오늘은 좀 괜찮하네. 이따가 으디로 가라고?"

"초음파 촬영하고, 물리치료받을 거니까 내가 모시러 오께. 걱정 말고 있어요잉?"

"잉. 알았어~"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괄괄하셨던 어르신의 이 능청스러운 모습에 웃음이 설핏 터진다. 가만히 보니 간호사들도 어머님들이 이런다는 거 다 아는 눈치다.


사실 덜컥 겁이 났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 병실에서 주사 멍이 들어 부은 팔과 굳은살 가득한 발을 주물러 드리며 속으로 계속, 계속 기도했다.


'건강하세요. 건강하세요. 건강하세요...'


간호사들이 나가고 잠시 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어머님들의 병원 품평회는 다시 시작되었다.


아들이 아들 구실 하는 데는 늘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어머님의 시간은 짧기만 하다.

여동생하고 교대하고 화장실서 기어코 한 줌 짜고, 세수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 맞다 아버지는 해남에 혼자 계시겠다. 전화해보자.

"아버지, 뭐하시요? 식사는 하셨소?"


"그래. 먹었다. 느그 엄마는?"

"보고 왔소. 괜찮합디다."


"응. 그래 알았다."

"그라믄, 주말에 우ㄹ..."


"뚜...뚜...뚜..."


아버지도 잘 계시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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