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의 뱀, 그리고 본능

100개의 글쓰기 43

by 김민성


그날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두 마리 뱀을 보았다.
아내라면 기겁을 했겠지만, 어릴 때부터 대수롭지 않게 보아왔기에 내심 반갑기까지 했다.
매끈한 모습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어떤 연구에서 새끼 원숭이에게 뱀을 보여줬더니 경계하고 공격성향을 보이거나 했다고 한다.
어쩌면 인간의 DNA에 태생적으로 뱀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각인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동서양 할 것 없이 뱀은 신비한 동물로 묘사된다. 신화에는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 우로보로스를 완전함의 상징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가 사용하는 지팡이가 나오는데 뱀이 감싸고 있는 형태다. 아마도 고대인들은 뱀이 허물을 탈피하는 모습에서 재생과 치유의 의미를 의학에 투영했던 것 같다. 대한의사협회 심벌에도 뱀 한 마리가 보인다.
성경에서는 사탄을 뱀에 비유한다. 하와를 꾀어 선악과를 먹게 한 악의 원흉이다.
한편으로 예수님은 뱀같이 지혜 로우라.. 고 하시거나,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욕하시기도 하셔서 성경에도 뱀은 이중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사실 동양도 별다르지 않다. 집에 사는 구렁이는 함부로 죽이는 거 아니라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다. 악운을 막아주기도 하고, 그런 구렁이를 오히려 집의 주인처럼 대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뱀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으스스한 분위기에서 귀신 이야기와 엮이면서 더 흥미진진했었다.

뱀과 떼어놓기 힘든 상서로운 동물로 용이 있겠다.
서양의 드래곤이 그냥 태어난 존재라면 동양의 용은 보통 수천년 수행을 쌓아 승천하는 존재로 나온다. 짐승이 자신의 본능을 자제하고 억눌러 선업을 쌓고 쌓아 여의주를 얻어 승천하면 용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천년을 수행했지만 여의주를 얻지 못해 승천하지 못한 뱀을 ‘이무기'라 따로 부르기도 한다.
이루지 못한 꿈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며 한이 쌓이고 독이 쌓인 비운의 동물이다.

그래서 한이 쌓인 이무기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악행에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마음 한 곳에서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짠함을 느꼈었다.

긴 상념에 빠져 있는데 의식의 저 멀리 어느 곳에서 뾰족한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닝겐아! 나도 배 아프다고!! 다 쌌으면 빨리 나와! 니 거기 언제까지 앉아있을래!!”

정신이 번쩍 든다. 오른손을 얼른 내려 주섬주섬 버튼을 찾아 누른다. ‘띠링' 소리와 함께 맑은 물줄기가 뒤를 간질인다. 화장지로 대충 뒤처리를 하고 바지를 추스르고 일어나 아래를 내려 본다.
간만에 본 갈색 뱀 두 마리에게 이별을 고한다.
지금은 이렇게 헤어지는구나. 긴 여행을 마치고 어디선가 유기농 비료로 거듭나렴. 언젠가 쌀이 되어, 사과가 되어, 상추가 되어, 채소가 되어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내가 고기를 좋아하는 이유지…

“안 나와?”

“어… 어… 지., 지금 나가.”

문 열고 나가는데 아내의 손이 날아든다.

"으아! 야 이 닝겐!! 냄새!!!!!!”


쾌변은 언제나 옳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일단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