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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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직업이 직업인지라 종종 아이들 문제로 고민을 토로하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솔직히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은 천천히 그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정도다. 더 전문적인 영역은 내가 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내가 만나는 거의 대부분의 아이는 평범하고 착한 아이들이다. 언론에서 자주 나오는 문제가 있는 10대들의 범주에 들어가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 그러니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천천히 엄마의 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꽤 만족해하신다.

무엇보다 대부분 아신다. 아이가 큰 사고 치지 않고, 늘 자신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에구…. 그 정도면 정말 착하지요. 요즘은 사고 치지 않고, 집에만 잘 들어와도 효도하는 거잖아요. 하하하!’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신다. 그리고 정말로 내 눈에 비치는 아이들은 다들 어찌 그리 예쁘고 기특한지 모르겠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는 말은 아이들을 위해 준비된 말 같다.

하지만 그 ‘큰 사고 치지 않는 것만도 효도'라는 말…. 그게 내 이야기가 되면 달라진다. 살면서 나는 정말 큰 사고 치거나, 부모님 가슴에 못 박을만한 일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 나름 평범하고, 착하게 살았다. 열심히….
그런데 내가 부모님께 효도했다고 느낀 적이 사실은 없다. 늘 무심한 나 자신이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올여름, 유난히 덥다. 지난번에 해남 부모님 댁에 갔을 때, 아버지는 큰아들만 온 것이 못내 아쉬워하셨다. 어디선가 장어구이를 포장해서 사 오셨는데, 큰며느리에게 먹이고 싶으셨던 거다. 우걱우걱 먹는 아들을 보며 다음에는 꼭 당신 큰며느리 데려오라고 하셨다.
‘아니, 아들 장어 먹는 것은 아깝고, 며느리 장어 못 먹은 것은 안타까운 것이오?’라고 했더니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 하셨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꼬리까지 씹어먹었다. 와구와구!
안타깝게도 배가 불러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교회에서 한참을 일하다가 밤 9시쯤 다시 집에 갔다. 아까 배불러서 남긴 장어구이 마저 먹겠다고….

방문을 여니 뜨거운 바람이 후욱 불어 나왔다. 밤이 되었음에도 낮의 열기가 식지 않은 이유였다. 오후에 반주 한잔하셨던 아버지는 그때까지 주무시고 있었다. 아니, 더위에 지쳐 못 일어나셨다고 하는 것이 맞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끝에서부터 아릿한 통증이 퍼져 나왔다. 방문 열어 환기하고, 좀 미지근한 물 한 잔과 냉장고에서 꺼낸 냉수 한 잔 가져다 드리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평범하게 큰 사고 치지 않은 아들은 부모님께 뭔가 해드린 것이 참 없었다. 도대체가 왜 그러고 살았는지….

아버지는 밥맛없으시다 하셨다. 역시나 지치셔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밭에서 일하고 오신 어머니와 함께 앉아 시답잖은 농담을 하며 찬밥에 물 말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그 주에 광주에 올라와 집에 앉아 있는데, 자꾸 더운 방에서 일어나 지친 표정으로 앉으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지나가는 말처럼 아내에게 시골집 방이 너무 더워 아버지가 지쳐 보이더라, 돈 있으면 작은 벽걸이 에어컨이라도 달아드렸으면 좋겠다고 꺼냈다.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그러자고 했다. 며느리가 뭐 해드린 것도 없는데 그거 해드리고 싶다고.? 사실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다음날 아내는 점심 먹으며 다시 말했다. 에어컨 얼마나 하느냐고, 지금 신청해드리자고.

그래 여차저차 알아보고, 아는 분께 설치를 부탁드렸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전화드렸다.

“아부지. 덥지라?”
“여름인디. 덥제.”
“좋겄소.”
“뭣이야?”
“큰메느리가 에어컨 사드린다 합디다.”
“...”
“우째 말이 읎으시요?”
“느그 엄마한테 말하지 말어라.”
“(당황했다.) 네? 뭔 소리예요?”
“느그 돈 없는디 그런 거 설치해준다고하믄 못하게 할 것인디야. 그랑께 말하지 말라고...”

좋으시다는 이야기였다. '크크크’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그 주 금요일에 에어컨 설치가 끝났고, 한 주가 지난 후 토요일 저녁에 이번에는 아내랑 같이 놀러 갔다.? 아내는 부모님이 혹시나 전기세 나간다고 에어컨 안 켜시는 거 아니냐 걱정도 했다.
그리고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는 며느리가 사주신 에어컨 아주 시원하게 틀고 계셨다.
어머니는 밤이면 추워서 싫다고 이불 덮는다고 하시는데도 꿋꿋하게 틀고 있다고 흉을 보셨다. 그래도 아버지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큰며느리가 사준 에어컨이 무척 좋으셨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큰 사고 치지 않은 것이 그나마 효도라고 할 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틀렸다.
그 날 저녁, 아버지랑 앉아 낄낄거리면서 주거니 받거니 쏘맥잔 돌리는 동화작가 며느리를 보면서 깨달았다.
임지형하고 결혼한 것이 내가 지금까지 한 일 중 가장 큰 효도였다.
맞다. 이거 아내 자랑이다.
딱히 장바구니에 건담이나, 건담을 담아 놓고 쓴 글은 아니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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