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 아이의 오후
새벽 두 시. 경기도 어느 아파트 작은 방에 모니터 불빛이 흔들린다. 책상 위에는 과자 부스러기와 빈 머그컵이 널려 있고, 방 한쪽 선반에는 펴보지 않은 교과서들이 먼지를 쌓아가는 중이다. 열다섯 살 소년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게임을 하는 게 아니다. 게임을 만들고 있다.
로블록스라는 플랫폼 위에 자기만의 세계를 짓는 중이다. 화면 왼쪽에는 3D 모델링 도구가, 오른쪽에는 디스코드 채팅창이 열려 있다. 영어와 한국어가 뒤섞인 메시지가 쉴 새 없이 올라온다. "yo the lighting looks sick" "ㄱㅅ 근데 이 부분 텍스처 다시 해야 할 듯" "I can fix it by tmr. " 서울에 사는 중학교 1학년이 디자인을 맡았고, 부산의 고등학교 2학년이 코딩을 한다. 경기도 수지에 사는 친구는 3D 모델링 담당. 이 넷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온라인에서 서로의 작업물을 보고 "같이 할래?" 한마디에 팀이 됐다.
이 소년의 배경이 흥미롭다. 아버지가 미국에서 교육학 박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분이다. 한국 교육 현장을 보며 "이건 아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딸과 아들을 홈스쿨링하고 대안학교에 보냈다. 딸은 순탄하게 미국 대학에 진학했다. 문제는 아들이었지. 홈스쿨에도 적응하지 못했고, 대안학교에서도 맞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대부분을 게임에 빠져 보냈다.
부모는 걱정했다. 당연하다. 아이가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있으면 어떤 부모든 불안해진다. 아버지는 교육학 박사다. 남의 아이 교육은 이론으로 알겠는데, 정작 자기 아들은 게임만 한다. 교육학 박사의 아들이 게임에 빠졌다니 — 코미디 작가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무릎을 쳤을 거다. 어머니는 밤마다 남편에게 물었을 것이다. "이대로 괜찮은 거야?"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당신도 한 번쯤 비슷한 밤을 보낸 적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 소년에게 게임은 소비가 아니었다. 관찰이었다. 다른 사람이 만든 가상의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형을 뜯어보고, 건물의 구조를 분석하고, "이건 내가 더 잘 만들겠는데"라는 감각을 키워가는 중이었다. 부모는 몰랐다. 아이도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고. 그냥 재미있었을 뿐이다. 재미라는 감각. 이것이 이 소년의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소년은 처음으로 분명하게 말했다.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 부모는 디자인 학원에 보내주었다. 한 달 수십만 원. 대치동 학원비 한 달의 절반도 안 되는 돈이다. 소년은 거기서 배운 기술을 들고 로블록스에 첫 번째 게임을 올렸다. 전 세계 이용자들이 접속했다. 수익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거의 삼사백만 원이었다.
열다섯 살 소년의 월 수입이 대한민국 대졸 신입사원 평균 월급을 넘어서고 있었다.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통장 때문이었다. 로블록스는 수익을 달러로 정산한다. 달러가 원화로 환전되어 계좌에 찍힌 금액을 보고 엄마가 물었다. "이게... 게임으로 번 거야?" 소년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응. 근데 엄마, 이거 세금 어떻게 내요?" 열다섯 살이 세금 걱정을 하고 있었다. 성적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아들은 종합소득세 걱정을 하고 있었던 거다.
같은 시각 서울 대치동. 밤 열 시가 넘었는데 학원가 골목은 대낮처럼 환하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수학 학원에서 나온다. 다음 영어 학원까지 7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하나 집어 들고 뛴다. 차 안에서 기다리던 어머니의 전화가 울린다. "네, 영어 끝나면 열 시쯤 데리러 갈게요. " 이 어머니도 좋아서 이러는 게 아니다. 둘째 학원비를 이체하고, 첫째 수학 선행반 상담을 예약하고, 카톡 학부모 단톡방에서는 "○○이네는 벌써 중2 수학 끝냈대"라는 메시지가 올라온다. 읽는 순간 가슴이 철렁한다. 우리 애는 아직 5학년인데.
그 마음, 알지요. 이게 맞는 건지 매일 의심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그 느낌. 남편한테 말하면 "그럼 어떡하라고"라는 답만 돌아온다. 친구한테 말하면 "다 그래"라는 위로 아닌 위로뿐. 밤에 잠이 안 온다. 아이 학원 스케줄표를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 아이의 하루에 여유라는 게 없다는 걸 엄마인 나도 알고 있으니까. 대치동의 한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학원을 돌리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대한민국 학부모 수백만 명의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