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의 시작

1. 두 아이의 오후

by 송영광

그날 밤 깨달은 것이 있다. 모든 부모가 알고 있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대안을 모른다. 대안을 모르니 더 세게 달린다. 수백만 가정이 같은 러닝머신 위에서 뛰고 있다.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데, 도착지는 보이지 않는다. 러닝머신의 잔인한 점은 따로 있다 — 아무리 빨리 뛰어도 제자리라는 것을, 뛰고 있는 사람만 모른다.


그런데 경기도의 그 소년은 러닝머신에 올라타지 않았다.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 학원이 아니라 유튜브에서 배웠고, 교실이 아니라 디스코드에서 협업했고, 시험이 아니라 시장에서 검증받았다. "내가 만든 걸 사람들이 좋아한다. " 이 경험이 소년을 새벽 두 시까지 깨어 있게 만드는 연료다. 어떤 학원 숙제도 이런 연료를 만들어줄 수 없다.


오해를 막겠다. 대학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학원에 보내는 당신이 틀렸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지금 달리고 있는 이 길이 정말 아이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줄 수 있는지, 불안의 방향을 한번 점검해보자는 것뿐이다.


이 소년의 이야기에는 후일담이 있다.


정부의 '소프트웨어 미래 체험 사업'이라는 국가 과제가 있었다. IT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소프트웨어 교육을 제공하는 10억 원 규모의 사업이다. D.LAB이 이 사업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코로나로 오프라인 행사가 불가능해졌다. 로블록스 메타버스 안에 가상 건축물을 지어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문제는 해본 적이 없다는 것. 유튜브에서 로블록스 건축을 잘하는 크리에이터를 찾아 500만 원짜리 프로젝트를 맡겼다. 적어도 대학생 이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연락해보니 중학교 1학년이었다. 더 놀라운 건 이 중학생에게 팀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서울, 부산, 수지에 흩어진 10대 팀원들이 디스코드로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결과는 완벽했다. 한창 일하던 중에 "학원 가야 합니다" 하고 접속이 끊기는 장면만 빼면. 500만 원짜리 국가 과제 한복판에서 학원 시간표에 맞춰 사라지는 중학생. 이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코미디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팀원 한 명이 인턴으로 채용되었다. 아직 대학에 가지 않은 친구였다. 이력서 대신 포트폴리오가 있었고, 학위 대신 결과물이 있었다. 채용하고 보니 이 친구는 이미 로블록스로 월 삼사백만 원을 벌고 있었다. 회사가 제안한 인턴 월급보다 많은 돈을 이미 혼자서 벌고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책까지 쓰고 있었다. 면접관보다 인턴이 돈을 더 많이 버는 상황.


그 소년은 지금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다. 가야 하니까 가는 것이 아니다. 만들기 위해 배우러 가는 거다. 순서가 다르다. 목적 없이 대학에 밀려 들어간 사람과, 만들 것이 있어서 대학을 찾아가는 사람. 졸업 후의 모습은 출발선에서 이미 갈렸다.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정년퇴직, 부동산으로 은퇴.' 우리 부모님 세대의 성공 공식이다. 이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주변을 본다. 좋은 대학 나왔는데 취업이 안 되는 조카. 대기업에 다니다 50세에 밀려난 형부. "제2의 인생을 찾겠습니다"라며 치킨집을 차렸다가 1년 만에 접은 동네 아저씨. 결혼 전까지 잘나가던 대학 동기가 경력 단절 후 재취업을 포기한 이야기.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들었는데, 공부 말고도 챙겨야 할 것이 이렇게 많았다. 기대수명은 80을 훌쩍 넘었는데,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진다. 퇴직 후 3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아이 교육 걱정만 하다 보면, 정작 우리 자신의 30년은 아무 준비 없이 다가온다.


하지만 이것은 공포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모험의 시작이다. 낡은 공식이 깨진다는 건 새로운 공식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기도의 그 소년이 보여주었다. 경로는 하나가 아니다. 세상은 이미 바뀌었고, 바뀐 세상에는 우리가 아직 그려보지 못한 길이 열려 있다. 우리에게는 해결할 문제가 있고, 이뤄낼 과업이 있다. 그것을 함께 찾아가는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


이 두 아이 중 누가 더 행복할까요? 행복을 측정한 방법이 있다. 그 결과가 말하는 이야기는 당신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불편하다.

월, 화, 수, 목, 금, 토 연재
이전 03화성적은 세계 1위, 자신감은 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