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다. 일상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회사에 한 달의 휴가를 내고, 정신과를 다녔다. 매주 1시간씩 상담을 받았고, 항우울제와 공황장애, 강박장애 약을 처방받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신과에서는 보통 20분 이상 상담을 해주는 경우가 드물다. 환자가 많기 때문에 초진이 아닌 이상, 한 사람에게 오랜 시간 상담을 해주기 어렵다고 한다. 나는 운 좋게도 상담이 끝날 때마다 선생님이 다음 스케줄을 잡고, 1시간씩 상담을 해주셨다. 예전에 어디서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은 단짝처럼 손을 잡고 다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아 다행이다.
회사를 쉬기로 하고 병원에 갔을 땐 처음보다 속 깊은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나의 20대 이야기'였다.
나는 지방대를 졸업했다. 가고 싶었던 대학이 있었지만 수능성적이 좋지 않아서 가지 못했다. 딱히 불만은 없었다. 학교는 성적순으로 가는 거고, 나는 공부를 잘하지도 노력을 많이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알았다. 지방대를 졸업하면 사회에서 주어지는 '기회'가 적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대기업, 공기업 공채는 경쟁이 치열했고, 지방대생에게는 서류 통과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도 딱히 불만은 없었던 것 같다. 명문대 학생들은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나보다 더 노력했고, 나는 그들만큼 노력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기회가 생기며 뭐든지 했다.
"무조건. 열심히"
물론 공부만 한건 아니었다. MT도 가고 술도 먹었고, 여행도 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일식집, 편의점, 빵집, 시장조사 아르바이트를 했고, 작은 제지회사와 인도에 있는 한국기업에서 6개월간 인턴을 했다. 졸업을 앞두고는 소위 '스펙'이 부족하는 생각을 했고, 해외에 있는 여러 한국 기업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주로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나라. 나처럼 열정이 가득한 사람에게 많은 기회가 열려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캄보디아에 있는 의류 OEM 회사에서 채용형 인턴으로 공장에서 숙식하며 2달을 일했고, 인도에 있는 한국 기업에 계약직으로 1년을 일했다.
나에게도 '경력'이라는 게 생기자, 한국으로 돌아와 공채 준비를 했다. 토익, 토익스피킹 점수와 자격증을 따며 취업준비를 했고, 1년 만에 원하던 공기업에 입사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말했다.
"참 열심히 살았네요. 단정 지어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헤세드 씨는 지금 '번아웃'된 상태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네요. 혹시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들어보셨어요?"
*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았다.
"그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겪는 거 아니에요? 일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무기력해지는 거요. 전 워커홀릭은 아니에요. 일을 사랑하진 않아요. 그냥 회사에서 월급 받으니까 하는 거예요"
하지만 지사로 옮기기 전 부서에서 들은 말들이 떠올랐다.
"헤세드 씨, 그 정도면 됐어. 글 잘 썼네. 그만 고쳐"
"오늘도 야근이야? 그러다 몸 상해"
이런 말도 들었다.
"헤세드 씨는 항상 열심히 하니까 내가 하나라도 더 가르쳐줘야 할거 같아"
부서를 옮기기 전 나는 홍보실에서 3년을 일했다. 연설문, 기고문, 기획보도, 인터뷰, 임직원 서신 등 사장님 이름으로 나가는 글은 모두 썼다. 처음부터 쓴 글도 있고, 부서에서 초안을 받아 마치 사장님이 쓴 것처럼 고치는 일을 했다.
글 쓰는 걸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내가 다른 사람의 글을 쓴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를 나온 것도 아닌데. 글을 못써서 사람들한테 욕먹으면 어떡하지?'
그래서 노력했다. 한번 쓴 글을 몇 번이고 고쳤다. 처음 쓴 글은 형편없었지만, 고치면 고칠수록 나아졌다.
정답이 없는 일이라 끝맺음도 내가 해야 했다. 내 눈에만 유독 커 보이는 글의 못난 부분들을 다듬었다. 남들보다 2배, 3배는 더 노력해야 비슷해진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누군가가 "이번 글은 참 좋다"라는 말을 하면, 웃으며 말했다.
"영혼까지 갈아 넣었어요"
홍보실에서 글을 쓴 지 2년이 되었을 때, 인사발령 시기를 맞춰 부장님께 찾아갔다.
"부장님, 이번엔 다른 부서로 가고 싶습니다. 글 쓰는 일을 더 할 자신이 없어요. 입사 5년 차인데 다른 업무도 배우고 싶습니다"
부장님은 말했다.
"지금 잘하고 있는데. 왜? 1년만 더 고생해줘. 올해 홍보실 정원이 줄어서 사람 없는 거 헤세드 씨도 알잖아"
면담은 그렇게 끝났고, 나는 글 쓰는 일을 하면서 다른 업무도 배울 수 있었다. 기사 쓰는 일은 줄었지만, 새로운 일을 가르쳐준다는 말과 함께 업무량은 늘었다.
그때 부장님께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글 쓰는 일 1년만 더하면 병날 것 같아요"
"새로운 업무는 새로운 부서에 가서 배우겠습니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하며 지난날을 돌아보니, 처음으로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께 말했다.
"그럼 제가 너무 열심히 해서 이렇게 됐다는 건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열심히 살아서 번아웃이 온 게 아니다.
일하는 방법을 몰랐다.
'적당히. 요령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