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찾아온 번아웃으로 회사를 쉬게 된 이야기
평소처럼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오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어두 컴컴해진 도로 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불로 바뀌고, 천천히 액셀을 밟고 가는데 갑자기 옆에서 "빵" 클랙슨이 울렸다.
"뭐지?"
순간적으로 차선을 인지하지 못해 옆 차선을 침범한 것이다. 다행히 사고는 피했지만 여태껏 이런 적이 없었기에 기분이 이상했다.
"오늘 좀 피곤했나. 왜 이러지.. 얼른 집에 가서 씻고 자야겠다"
조금 피곤해서 그랬겠거니 생각했지만 그것은 시작이었다. 다음날 출근해서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있는데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이거는 조금 달라서 00 사이트에 들어가서 한번 더 확인해주셔야 해요. 이 부분은 규정이 자주 바뀌니까 꼼꼼히 체크해주셔야 하는데, 어디서 확인할 수 있냐면요.."
전임자가 알려준 대로 옆에서 따라 하면서 배우고 있었는데,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알려준 것과 다른 걸 클릭하고, 모니터 화면에 있는 내용을 찾지 못해 헤맸다.
전임자는 당황하는 나에게 말했다.
"처음에 이것저것 배우니까 정신없죠? 그래도 시간 지나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예요"
직장인 7년 차였던 나는 올해 초, 지사로 인사발령이 나면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야근과 주말근무를 하며 낮에는 일을 배우고 밤에는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처음에 배우는 게 오래 걸려서 그렇지. 열심히 하면 나중엔 잘하니까'
일할 때 빠릿빠릿하진 않아도, 엉덩이 무거운 것만큼은 자신 있던 나였다. 그래서 이 시간을 '그저 잘 견디면' 될 줄 알았다.
평범했던 일상이 깨지기 시작한 건, 지사에 근무한 지 2주가 되었을 무렵이다. 퇴근길에 사고가 날뻔했던 것을 시작으로 불안한 하루의 연속이었다. 출퇴근길에 운전대를 잡는 게 두려워졌고,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업무 실수가 많아졌다. 밥을 먹을 때 돌덩이를 씹어 삼키는 것처럼 입맛이 없었고, 몸과 마음이 무거워 밤에 잠드는 것도, 아침을 깨우는 일도 힘들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에 몸이 안 좋아 외출을 내고 병원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불현듯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숨이 가빠지면서 잘 쉬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다음날 태어나 처음으로 정신과에 갔고,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최근에 근무지와 업무가 바뀌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신 거 같아요. 더 상담을 하고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일상이 어려우실 것 같아서 소견서를 써드릴게요. 당분간 쉬면서 치료를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었기에 언제쯤 내가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있을지 몰라서 휴직을 하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진단서가 아닌 소견서로는 휴직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다음날 부장님께 소견서를 보여드리며 개인 휴가를 쓰겠다고 말씀드렸다.
"부장님, 저도 제가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일을 할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회사 업무에 집중이 안되고, 일상생활조차 안되고 있어서 당분간 회사를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오랜 취업준비 끝에 입사했던 공기업이었다. 7년 차 직장인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자격증도 따고, 표창도 받으며 나름 꾸준히 커리어를 쌓았다. 어렵게 입사한 만큼 인정받고 승진도 꿈꿨던 소중한 직장이었다. 하지만 회사에 정신과 소견서를 내며 쉬겠다고 말했을 때는 이미 모든 걸 내려놓은 상태였다. 이렇게 회사를 쉬게 되면 사람들이 뒤에서 뭐라고 얘기할지, 앞으로 근무평정에 어떤 식으로 반영될지 까지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러다 어느 순간 내가 세상에서 없어질 수도 있겠구나'
일단은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신과 소견서를 본 부장님은 말했다.
"회사를 쉬겠다고? 헤세드 씨. 우리 회사 사람들 말 많은 거 알지? 이렇게 쉬면 앞으로 직장 생활하면서 평판 관리에도 좋을 게 없을 텐데"
사람 한 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내가 빠지게 되면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사도 당장 어렵겠지만, 나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였다. 그렇게 그동안 사용하지 못했던 이월 휴가와 보상 휴가까지 모두 사용하니 한 달 정도 쉴 수 있었다.
회사를 쉬면서 나의 무기력감은 커져갔다. 주변에서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일하면서 많이 지쳐서 그래.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와"
"모처럼 쉰다고 생각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해봐"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회사라는 안정된 무리에서 도태되었다는 불안감과 하루라도 빨리 회복해서 복귀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싸여 병원 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회사를 쉬면서 생각했다.
왜 인수인계받을 때 말하지 못했을까.
"업무가 좀 많은 것 같습니다"
왜 야근하면서 처리해놓은 일을 아침에 부장님이 본인 스타일대로 다시 하라고 했을 때 말하지 못했을까.
"자꾸 다시 하라고 하시니, 일이 계속 쌓입니다"
아마도 나는 '이런 말은 하면 안 돼'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회사일은 누구나 힘들고, 모두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엄살을 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나를 무책임하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두려웠다.
결국 내 일상이 무너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왜 내 마음은 들여다볼 생각은 못했을까'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보다 중요한 건 '나'다. 내 마음과 내면을 들여다보고 돌보는 일은 내가 아니면 아무도 해주지 않는 일이다.
이렇게 나는 회사를 쉬게 되었다. 지금은 매주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고, 유일한 활동은 '매일 걷기'이다. 언제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앞으로 직장생활이라는 걸 할 수는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 배운 게 있다.
몸과 마음이 닳아질 때까지 나를 소모시키지 말 것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보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
일상이 무너지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