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9월 1일 난 울산으로 돌아왔다. 구릿빛 피부는 양평에서의 지난 기억들을 떠오르게 만들곤 하였다. 1학년 2학기로 복학을 하는 거였다. 복학을 할 줄 알았더라면 미리 수학이나 물리 공부라도 해놓아야 되는 건데라고 잠시 후회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일에 집중해야 됐다.
‘안되면 될 때까지’
군대에서 항상 외쳐되던 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구보를 하였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집으로 와 샤워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갔다. 수업을 듣고 수업이 없으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였다. 학교에 있는 도서관은 10시면 문이 닫았기에 10시까지 공부를 하고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준비를 하고 헬스장으로 가서 운동을 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다. 주말에는 pc방에서 알바를 하고는 하였다.
반복된 생활이었지만 군대를 가기 전 1학기 때와 다른 마인드가 있었다. 몰라도 열심히 한번 해보는 거라고 생각을 했다. 수업에 가면 항상 맨 앞줄에 앉았고 수업시간에도 수업에 최대한 집중을 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시간에는 간간히 졸았다. 습관을 바꾼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학책을 펼쳐서 배운 내용을 보고 있으면 몰라서 고등학교 과정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log가 뭔지 ln이 뭔지 e^0이 뭔지도 모르는데 미적분을 해야 되는 격이었다.
그래도 1학기를 하고 군대를 갔다가 복학한 친구들이 몇 명 있어서 친구들에게 몇 번 묻고는 하였지만 친구들이 설명해주는 수준조차도 어려웠다. 그게 문제였다. 친구들이 아무리 쉽게 설명해주어도 기본기가 없는 내가 이해하려면 몇 번이나 반복이 필요했다. 친구들은 점점 나에게 설명하는 걸 꺼려하기 시작했고 나도 그걸 감지하고 혼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인문계에 대한 열등감이 커져만 갔다.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긴 했으나 동아리 행사며 친구들 모임이며 다 참여를 했던 것 같다. 어느덧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왔다. 과목별 공부 스케줄을 짜고 공부를 했다. 그리고 시험을 치러 들어갔다. 문제를 보니 다 봤던 문제들이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난 조금이라도 응용문제가 나오면 풀지 못하는 것이었다. 백지를 내고 나왔다.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고 속상했다. ‘난 정말 이것밖에 안되는 걸까?’ 하고 많이 묻기도 하였다. 그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해보는 거야.’ 하고 나를 응원해주었다.
꾸준히 공부는 하고 있었지만 공부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알바도 그만두고 독서실도 등록하였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그날 공부한 것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다. 고등학교 기간 놀았던 나를 원망하였다. 나를 원망할 때일수록 일기에는 나를 응원하는 글을 쓰곤 했다.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독서실로 향해서 공부를 더했다. 어떻게든 공부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기말고사 기간이 되었다.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했고 아는 만큼 문제를 풀었다. 그래도 중간고사에 비하면 크나큰 발전이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한 학기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방학이 되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나는 계절학기를 듣거나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스키장 알바를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2학년 1학기가 끝나고 나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가야겠다는 플랜을 짜는 중이었다.
한 학기의 성적이 발표 났다.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갖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2.71이란 학점이 나왔다. 3.0은 넘을 줄 알았는데 충격이었다.
‘1학년 1학기 성적도 재수강할 것 투성이인데, 앞으로 재수강이 더 나와서 안되는데..’
1학년 1학기는 학사경고를 받았고 2학기는 2.71. 앞으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도 재수강할 과목들이 나온다면 내 대학교 커리어에 있어 문제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그리고 난 결심했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조금 더 빨리 가야겠어.’
스키장 알바는 면접에서 붙었지만 일정을 취소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호주로 가겠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꽤나 놀라신 눈치였다. ‘안된다.’고 단칼에 반대하셨다. 하지만 난 꼭 가겠다고 지금 내 상황을 설명드렸다. 마침내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냈다. 워홀에 대해서는 다음 카페와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정보를 검색해보았지만 그래도 모르는 게 많았다. 유학원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호주 워킹홀리데이 상담하러 왔어요.”
“네 안녕하세요. 여기 앉으시죠”
“호주 워홀을 가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요.”
“지역은 어디 생각하고 계신 거죠?”
“시드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시드니요. 시드니에서 어학연수를 하기에는 다소 비싼 감이 있어서 요즘은 필리핀 연계 어학연수도 많이 하시는데요. 필리핀에서 3개월 정도 어학연수를 하고 시드니에서 2달 정도 어학연수를 하는 방향은 어떠세요?”
“필리핀이요? 필리핀이 영어를 하나요?”
“필리핀어학원에서는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단기간에 영어실력을 올릴 수 있어서 요즘 인기가 좋답니다. 필리핀 어학연수를 하시는 지역으로는 세부, 바기오와 같은 지역이 유명하고요.”
그 외 필리핀 어학연수 장단점과 시드니에서 살 집, 비자 준비 및 신청 관련 설명 등을 해주셨다. 당장 떠나고 싶었다. 몇몇 어학원을 추천해줬는데 어학원도 그 자리에서 선택했다.
“3월에 가장 빨리 나갈 수 있는 날짜가 언제예요? 그 날짜에 출국하는 걸로 할게요.”
상담을 끝내고 유학원을 나왔다. 2011년 3월 13일. 출국일이 정해졌다. 출국날까지 남은 시간은 토익공부와 영어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문법책을 한 권 사서 공부를 하고 독학으로 토익공부를 했지만 공부를 하는 날 보다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 더 많았다. 외국을 가기에 앞서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먹고는 하였다. 결국 떠나기 전까지 토익시험도 한번 못 쳤다.
비자와 비행기표 같은 것들은 유학원에서 다 해결해주었다. 시간은 빨리 흘러갔고 3월이 다가왔다. 떠나기 전 아빠가 있던 베트남으로 가족들이 다 같이 여행을 갔다. 가족들과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여행하였다. 군대 가기 전 일본 여행에 이어서 2번째 해외여행이었다. 이제 곧 모든 게 신비롭고 설레는 해외여행을 1년 동안 할 수 있다는 것에 마냥 기뻤다. 가족들과도 1년간 못 보기 때문에 많은 추억들을 남기기 위해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베트남 여행에서 가이드가 영어를 쓰면 하나도 못 알아듣고 꿀 먹은 벙어리 마냥 눈만 깜빡여 댔다. 호텔 체크인을 할 때도 직원과 영어로 대화를 하는 큰누나가 대단해 보였다. 나도 얼른 필리핀 그리고 호주로 가서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날이 왔으면 하고 생각했다.
베트남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와 짐을 쌌다. 어느새 기다리던 출국하는 날. 불안하기도 하면서 설레기도 한 심정으로 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앞으로 1년간 목표는 영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