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이 되어야 할 2011년 봄, 나는 휴학을 하고 필리핀으로 출국을 하였다. 필리핀 바기오.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지만 내가 3개월 동안 영어와 친해져야 될 곳이었다. 몇 개의 어학원 중에서 값이 싸고 맨투맨 영어 시간이 많은 학원으로 선택했다.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를 도착했더니 어학원에서 나온 버스가 대기를 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6시간 정도 걸리는 바기오로 향했다. 새벽시간이라 잠을 청했다. 바기오 어학원에 도착했다. 어학원은 규모가 크지 않고 아담했다. 룸을 배정받았다. 2인 1실인데 거실과 화장실은 같이 셰어 하고 옆방에도 2인 1실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짐 정리를 하고 돈 환전을 위해서 시내에 나갔다 왔다. 수업을 신청하고 책을 구입했다. 1:1 수업시간 때 하는 책과 그룹스터디할 때 필요한 책이었다. 1:1 수업 선생님은 내가 직접 신청이 가능했다. Noemi, Mae 선생님을 신청했다. 처음 선생님들을 만났을 때는 당황스러웠다. 간단한 자기소개는 가능했지만 그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나는 영어문장으로 의문문을 만들 줄도 모를뿐더러 주어에 맞는 be 동사도 몰랐다. 수능 때 영어공부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영어단어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려니 말보다 몸이 앞섰다.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저녁시간에는 밥을 먹고 숙제를 했다. 숙제를 끝내고 자기 전에는 미드를 봤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영어를 공부했다. 주말에는 학원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주변 관광지로 여행을 가곤 했다. 처음에 간 곳은 산페르난도라는 해변이었다. 가서 처음으로 서핑을 배우고 물놀이도 하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영어를 못하는 것 빼고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먼저 온 사람들이 영어는 자연스레 적응될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조언해주었다.
2주쯤 지나자 물갈이를 했다. 하루 종일 식은땀이 나고 감기몸살이 걸린 듯 몸이 아팠다. 외국에 나오면 누구나 겪는 과정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타지에서 아프니 괜히 부모님과 친구들 생각이 났다. 이후 주말마다 헌드레즈 아일랜드에 가서 배를 타고 섬들을 구경하는가 하면 캠프 존 헤이에 가서 승마를 하고 팜 그루브에 가서 수영을 하곤 했다. 필리핀 북쪽으로 여행을 가서 비간이라는 곳을 가기도 하였고 파구 풋이라는 곳에서 랍스터를 먹기도 하였다. 벤캅뮤지엄에서 예술작품을 보면서 감상을 하기도 하고 산페르난도 카지노에 구경을 가기도 하였다.
학원에 있는 형들 누나들과 친해지면서 볼링장, 영화관, 쇼핑몰, 펍 등을 돌아다니면서 참 재밌는 시간들을 보냈다. 3개월이란 시간 동안 매일매일이 새로웠고 재밌었다. 걱정하던 영어도 꽤나 많이 늘었다. 놀러 다니면서 영어를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 학원에서 배울 때보다 훨씬 더 빨리 영어를 익힐 수 있었다. 학원 수료를 할 시간이 다가왔다. 필리핀에서 스킨스쿠버를 배우고 호주로 가는 계획을 짜 놨던 터라 마닐라를 거쳐서 세부로 가야 됐다. 마닐라는 혼자서 돌아다니면 위험한 곳이라 다들 조심하라는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안전한 상태로 세부로 향할 수 있었다.
세부에 도착하자 스쿠버 샵에서 픽업을 나와주셨다. 샵으로 도착했다. 6박 7일간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계획했던 오픈워터 과정에서 어드밴스 과정을 더 해서 강습을 받기로 하였다. 어머니가 스킨스쿠버를 하다가 고막이 터진 적이 있었기에 나보고 조심해서 다이빙을 하라고 하였다. 이론교육부터 배웠다. 그리고 샵에 있는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시작했다. 이퀄라이징이 되지 않아서 연습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샵에 코치로 있는 치홍이 형의 경우에는 침만 삼켜도 이퀄라이징이 된다고 하였는데 난 코를 손으로 막고 수시로 이퀄라이징을 해줘야 했다.
수영장에서 핀킥하는 법을 배우고 호흡하는 법 BCD를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근처 바다에 들어가서 연습을 하고 나왔다. 수영장에서 할 때랑 바다에서 할 때랑 이퀄라이징 압력이 훨씬 차이가 났다. 난 이퀄라이징이 늦게 되는 편이었는데 왼쪽 귀랑 오른쪽 귀가 이퀄라이징 되는 속도도 달랐다. 잠수가 끝나고는 한국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오신 손님들과 같이 삼겹살에 소주를 먹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테라스로 나오니 하늘색 세부 바닷가가 보인다. 아무 걱정 없이 다이빙만 하는 일정이다 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오전 일정으로 다이브를 했다. 이퀄라이징이 제대로 안됐다. 침을 뱉으니 피가 나왔다. 푹 쉬다가 오후에 한 다이빙 이퀄라이징이 잘 되었다. 나는 정말 천천히 이퀄라이징이 되는 편이라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세부 바닷속에서 하는 다이빙은 정말 아름다웠다. 형형색색 산호초들과 만지면 부풀어 오르는 노란 복어와 함께 사진들을 찍기도 하였고 해파리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BCD를 조절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핀 킥도 익숙해졌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바닷속이 좋아졌다. 잠수를 끝내고 세부 바다를 보면서 맥주를 먹고 있으면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게 아니구나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다음 날도 4번의 다이빙을 마치고 이제는 나이트록스 과정을 하게 되었다. 바닷속 동굴을 가는 코스였기에 기다려졌다. 배를 타고 가서 닻을 내리면 줄을 잡고 잠수를 하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수심이 깊은 지역이라서 긴장이 많이 되었다. 강사님이 붙어서 안전하게 이퀄라이징을 하면서 내려갔다. 그리고 동굴을 찾아 가는 데 가다 보니 낭떠러지가 나왔다.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떨어질 것처럼 무서웠지만 바닷속이라 괜찮았다. 부력을 조절해가면서 절벽 밑으로 계속 하강했다. 한참을 하강하였더니 땅에 도착하였고 묘비가 하나 있었다. 여기서 죽은 스쿠버를 위한 추모비인 거 같았다. 잠시 묵념을 하고 동굴로 들어갔다. 입구가 넓고 커서 쉽게 생각하고 잠수하는 다이버들은 안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동굴 형상으로 인해서 나올 때 산소가 부족해서 죽는다고 하였다. 코치형들과 사진도 많이 찍고 재밌게 다이브를 했다.
모든 다이빙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오신 손님들과 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고 난 또 다음날 아침에 있는 펀 다이빙을 등록했다. 다이빙의 매력에 푹 빠져 버린 것이다. 큰 물고기들을 보고 물고기들 밥도 주고 하는 다이빙이었다. 배를 타고 세부 바다 한가운데로 갔다. 에메랄드 색 바다에서 다이빙 준비를 끝냈다. 그리고 다이빙을 시작했다. 마지막 날, 이퀄라이징을 혼자 하면서 하강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물살은 거셌지만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 내려가자 이름 모를 많은 물고기들이 있었다. 고기밥을 뿌리면서 한참 물고기들과 어울렸다. 바닷속에 있으면 여유롭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치 명상을 하듯 주위는 조용해져서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매력 때문에 사람들은 스쿠버를 하게 되나 보다. 마지막 다이빙을 끝내고 수면으로 올라왔다. 형들과 저녁을 먹고 세부에 있는 클럽을 갔다. 그리고 세부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로 갔다. 마닐라에서 수속을 밟고 호주 시드니로 향했다. 3개월 동안 필리핀 바기오에서의 어학연수 생활, 그리고 6박 7일간의 세부에서의 꿈같은 시간들이었다.
6월 10일 아침 시드니에 도착하였다. 첫날 도착해서 시드니에 있는 유학원으로 갔다. 유학원에서는 미리 선별해둔 집들을 보여주었다. 난 한인 셰어하우스에 있는 거실 셰어를 선택했다. 거실에 파티션을 쳐놓고 사는 형식이었는데 집값이 비싼 시드니에서는 베란다 셰어, 거실 셰어의 형태로도 셰어를 한다고 하였다.
시드니에는 다행히 필리핀에서 같이 공부를 하던 형들이 있었다. 형들과 함께 산책을 하기도 했고 룸메형과 함께 시내를 돌아다니기도 하며 시드니 생활에 적응해갔다. 어학원은 3개월 코스로 등록하였는데 필리핀에서 생긴 자신감은 다 사라졌다. 호주 특유의 발음과 억양에 적응이 안 되어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여기가 정말 영어권 국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개월간 학원 연장을 했다. 아이엘츠 어드밴 스반까지 들으며 영어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시간이 지나며 호주에 적응을 했고 어학원에서 사귄 친구들과 친해졌다.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브라질, 러시아 등 많은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고 학원이 끝나면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주말에는 같이 술을 마시고는 하였다. 돈이 없어 청소 알바를 해보기도 하였고 초밥집 주방에서 알바를 하기도 하였다. 시드니에 유학생으로는 나름 적응을 잘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랑 통화를 하다 큰누나 결혼날짜가 잡혔다고 하였다. 한국에 잠시 들어가야만 했다. 어느 날 초밥집 알바를 끝내고 학원에 들어가기 전 한국에 있는 친구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친구는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다 손을 다쳐서 일을 쉬고 있다고 했다.
“니 할 거 없으면 호주 와라.”
“어떻게 가노. 영어도 못하는데”
“내 10월 24일부터 한국 들어갔다가 2주 정도 있다가 호주 다시 온다. 비자까지만 발급받아놔라”
“되겠나?”
“일단 도전해 보는 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