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대학10년 07화

7. 레저는 배우고 싶은데 돈은 없어-2

by 레저왕

그러던 어느 날, 빠지 정리를 끝내고 친한 코치형과 수사 스키 타는 영상을 보고 있었다.


“형님, 저 선수 자세 죽이는데요. 저도 저 정도만 기울기만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컷팅 들어가는 자세가 예술이다 진짜.”


컴퓨터를 보면서 얘기를 한참 하자 선배 코치들이 불렀다. 코치들끼리 회식을 한다고 술상을 차려주셨다. 생활하면서 힘든 적은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 언제부터 코치일을 하기 시작하게 되었는지 등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금방 술은 동이 났다.


“재영아 가서 술좀 더 사와라.”

“네”


카드를 받아 들고 참았던 오줌을 강에다 쌌다. 그리고 컴퓨터 책상 위에 있는 차키를 들고 출발했다. 편의점은 걸어서 10여분 거리 차를 타면 3분인 거리에 있었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멀어 보였다. 코치들이 다 같이 사용하는 은색 갤로퍼에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았다. 이윽고 편의점에 도착하였다. 술과 안주를 사들고 나왔다. 편의점 앞에서 시동을 걸어놓고 담배를 한 대 폈다. 술을 먹고 피우는 담배는 항상 더 맛있는 법. 담배의 연기마저도 고소하게 느껴졌다.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빠지로 돌아가는 길. 마주오는 차 헤드라이트가 너무 밝게 느껴졌다. 정면에 차가 있는 것 같았다. 보트를 한참 운전할 때라서 나도 모르게 핸들을 민감하게 꺾었다. 차가 기우뚱했다. 당황해서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게 액셀을 밟았고 핸들도 좌측으로 꺾어버렸다. 차가 윙 소리를 내면서 상가로 돌진했다.


상가를 뚫고 들어가는 그 순간 갤로퍼 앞 전면 유리가 산산조각 나면서 부서지는 걸 봤다. 팔로 얼굴을 감싸서 보호하려 했지만 충격에 의해서 핸들에 얼굴을 박았고 유리파편들이 이마에 박히며 피로 범벅이 되었다. 차량이 부딪치는 충격으로 인해서 수동기어가 있는 쪽에 무릎이 박혔고 살이 찢겨 나갔다. 무릎에 손가락을 갔다 댔더니 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벌어져 있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차에서 내리려고 시도해봤지만 오른쪽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이후 차에서 기절을 했는지 잠이 들었는지 기억이 없다.


한참 후 코치 형 한 명이 차에 있는 나를 불렀다. 술을 사러 가서 안 오길래 걸어왔더니 사고 나서 있었다 말했다. 응급차는 오고 있는 중이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였다. 다리가 안 움직여지는 것도 술을 먹고 운전을 했던 것도 사고를 난 것도 다 짜증이 났다. 병원을 가면서 계속 욕만 해댔다.


“아!!!!!!!!!! 시팔!”


옆에 형이 있었지만 참지 못하고 계속 욕을 해댔던 것은 무엇보다 나 자신이 가장 한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해있자 경찰관이 들어왔다. 음주운전 조사를 위해서 협조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너무 두려웠다. 몇 번 거절을 하자 결국 혈액 채취를 해갔다. 찢어진 오른쪽 무릎은 슬개골 인대가 끊어졌다고 하였다. 수술이 필요했고 수술을 했다. 수술을 하고 난 의사 선생님이 다행히도 수술은 잘 됐다고 하셨다. 그 이후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난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고 입원을 해있으면서 해결해야 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음주 조사 결과가 만취로 나왔기에 운전면허증은 취소가 되었다. 양평경찰서에 가서 음주운전 관련 진술서를 써야 했다. 아버지는 해외에서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보호자인 어머니께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갔다고 한다. 어머니는 놀라서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어머니는 내가 사고 났던 곳에 가서 피해자분들과 합의를 하고 경찰서도 들리고 많은 일들을 하셔야만 했다.


“이 정도니 천만다행이다.”


어머니는 찍어온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얘기해주셨다. 들어보니 내가 갤로퍼로 뚫은 상갓집은 1층 건물 형태로 부동산집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뒤에는 강이 있었다고 한다. 액셀을 조금 더 쌔게 밟았더라면 강으로 떨어졌을 테고 액셀을 약하게 밟아서 벽을 뚫지 못했다면 그 충격으로 내가 더 많이 다쳤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그 부동산집에서 고3 아이가 항상 공부를 하는데 그날은 서울에 갔다고 한다.


어쨌든 한 달 동안은 입원을 해야 되는 상황이니 다른 생각하지 말고 재활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시고 어머니는 울산으로 내려가셨다. 곧이어 사장님도 오셨다. 사장님은 어떻게 사고 난 건지 물으셨고 난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갤로퍼는 폐차를 해야 된다고 하셨다. 너무 죄송스러웠다. 사장님은 너무 걱정 말라고 했지만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더 걱정되는 나였다. 해외에서 일을 하고 계신 아버지 대신 큰아버지가 전화로 많은 것을 해결해주셨다.


오른쪽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한 일이었다. 화장실에 가려면 휠체어를 타고 가야 되었고 대소변을 가리기도 힘들었다. 누구에게도 교통사고 난 걸 알리지 않았었는데 창현이가 병문안을 와줬다. 휠체어를 끌어주면서 밥을 같이 먹으러 갔다. ‘이제 그만 사고 치고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라.’고 말해주었다. 맞는 말이었다.


‘오른쪽 다리만 제대로 나아서 원래 걷던 대로 걸을 수만 있으면 다시는 사고 치지 않을게요.’


하고 기도했다. 하느님에게도 부처님에게도 아무나 내 기도 좀 들어달라고 애걸해댔다. 물리치료를 받고 재활운동을 하고는 했다. 무릎은 어느 정도 괜찮아졌고 목발을 짚고 돌아다닐 정도가 되었다. 퇴원을 했다. 그리고 빠지로 돌아왔다. 빠지에서 재활운동을 자주 했다. 물에 들어가서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운동을 매일 했다. 처음에는 물속에서는 다리가 굽혀졌지만 지상에서는 다리 구부리는 게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호전되었다. 물리치료와 재활치료를 꾸준히 한 결과 어느 정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8월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나는 복학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로 돌아가서 꼭 졸업을 하고 말 꺼야. 이제는 사고 치지 않고 효도하는 아들이 되어야지.’


아마 음주운전으로 인해 교통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빠지 생활을 계속했거나 취업을 준비했을 수도 있었을 거다. 복학에 대한 생각이 확실치 않았던 내가 대학 졸업으로 부모님을 행복하게 만들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이때가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날 코치들과 다 같이 회식을 하고 인사를 나눴다.


“다음에 빠지 생활하게 되면 연락드릴게요!”

“그래 잘 지내고”


그렇게 난 1학년 2학기로 복학하게 되었다. 1학년 1학기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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