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3.1 만세운동 기념탑

'항일의 혼을 깨우다' 작업 2

by artist Ye

< 2019. 06. 27 >


- 용인 3.21 만세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항일의 혼을 깨우다'


작업 2. 수지 3.1 만세운동 기념탑



동천동 초입마을 사거리에서 수지 이마트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풍덕초등학교 옆으로

새마을 공원이 보인다.

일상적으로 차를 타고 지나다니던 길이라

빈 공터에 공원을 조성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항일의 혼을 깨우다'라는 주제로

'용인 수지 3·29 머내 만세운동을 조사하고

구체적인 작업 계획을 세우면서

'수지 3·1 만세운동 기념탑'이 새마을공원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지 3·1 만세운동 기념탑'은

용인독립운동 기념사업회에서 2007년 3월부터

수지구에 건립을 추진해서

시민의 자발적인 성금을 바탕으로

2008년 7월 기념탑 공모전에 정기웅 작가가 출품한

'독립의 메아리'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2009년 11월 29일 제막식을 가진

수지구 풍덕천동 소재 새마을 공원 내에

건립된 석조 기념비이다.


주탑은 가로 15m, 세로 12m, 높이 10m로

만세를 부르는 손을 형상화하고 있고,

부조형물은 가로 4.2m, 세로 0.9m, 높이 2.4m의

휘날리는 태극기를 나타내고 있다.


기념탑에 새겨진 글 :


1. 수지구민들의 1919년 만세운동


광교산과 탄천이 어우러진 수지구는 이종무 장군과

조광조 선생 등 선열의 묘소가 산재해 있어 충절의 정신이

면면히 흐르는 곳이다.

더구나 이곳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격전지였기

때문에. 나라를 사랑하는 주민들의 마음은

그 어느 곳 못지않게 드높고 뜨거웠다.

1919년 3월 1일부터 우리 민족은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에 맞서 전국 각지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항거하였다.

용인에서는 3월 21일 새벽 원삼면 좌전고개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어 포곡면과 수여면 양지면 등지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수지구에서는 3월 28일

고기리 구장인 이덕균(1879년생)과

안종각(1888년생)이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약속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동참을 권유하였다.

다음 날인 3월 29일 아침

두 사람은 마을 주민 1백여 명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동천리로 나아갔다.

4백여 명으로 늘어난 만세 행렬은 풍덕천리의

수지면사무소 앞에 모여 다시금 소리 높여

만세를 외쳤으며,

읍삼면 면사무소가 있는 마북리까지 나아가려 하였다.

이에 출동한 일제 헌병들이 해산을 명령하였으나,

주민들은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결국 시위대는 일제 헌병들의 무자비한 발포와 진압으로

가까스로 해산하였다.

만세운동은 3월 30일에도 이어져 수지면의 주민들이

읍삼면 방면에서 온 만세 행렬과 합세하였다.

어느덧 1천5백여 명으로 늘어난 만세 행렬은

읍산면 언남리 도로를 가득 메웠고,

만세 함성 또한 천지를 진동하였다.

이에 당황한 일제 헌병들이 무자비한 발포를 가하였는데,

이로 인해 안종각과 보정리 출신의 최우돌이

현장에서 피살되고 말았다.

일제는 만세운동 참가자들을 색출하기 시작하여

많은 수지 주민을 감옥에 가두고

야만적인 고문을 자행하였다.

이덕균은 1년 6개월의 징역을 얻도 받아 옥고를 치러야만

했으며 수지면 주민 16명이 일제 경찰에 끌려가

태형 90대에 처해졌다.

비폭력 평화시위로 전개된 수지구의 만세운동은

비록 일제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해산되었지만,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려는 수지구민들의 뜨거운 열망을

세계만방에 떨친 자랑스러운 의거라 할 것이다.


전 한국 독립운동사 연구소장/단국대학교 인문과학 대학장

문학박사 한시준 지음


2. 수지 3·1 만세운동으로 피살되거나 피체된 분들


< 피살자 >

안종각, 수지면 고기리

최우돌, 읍삼면(구성면) 보정리


< 피체자 >

이덕균, 수지면 고기리, 징역 1년 6월

이도애, 수지면 고기리, 태형 90

홍재택, 수지면 고기리, 태형 90

강준석, 수지면 고기리, 태형 90

권병선, 수지면 동천리, 태형 90

김영대, 수지면 동천리, 태형 90

김원배, 수지면 동천리, 태형 90

김현주, 수지면 동천리, 태형 90

남연찬, 수지면 동천리, 태형 90

윤만식, 수지면 동천리, 태형 90

윤승보, 수지면 동천리, 태형 90

이달순, 수지면 동천리, 태형 90

이희대, 수지면 동천리, 태형 90

정원규, 수지면 동천리, 태형 90

진기회, 수지면 동천리, 태형 90

천산옥, 수지면 동천리, 태형 90

최충신, 수지면 동천리, 태형 90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수지면의 주민들이

주변의 지역에서 일어난 3·1 만세운동에 대해 듣고

동리마다 각각의 역할을 부여하고 미리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만세운동이었다.


일제 헌병에 의해 만세운동이 진압되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피살되었으며 주모자들이 잡혀 들어가

일제의 고문과 엉덩이 살이 터지도록 태형 90대를 맞고

일제의 특별감시 대상으로 지냈다.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그때에

1천5백여 명이 모여서 만세운동을 한 것도 신기하고,

만세운동 이후에 일제의 감시와 통제를

묵묵히 참고 고통의 삶을 살아 냈던

수지면 주민분들의 암울한 시간들에 아픔을 느낀다.


수지3.1 만세운동기념탑당선작 / 정기웅 / 독립의 메아리/ 용인독립운동기념사업회


- 수지 3·1 만세운동 기념탑' 참고자료

http://blog.naver.com/skyblue9840/220547684688 설명

http://yongin.grandculture.net/Contents?local=yongin&dataType=01&contents_id=GC00904121 설명

http://yongin.grandculture.net/Contents?local=yongin&dataType=01&contents_id=GC00904041 설명

http://cafe.daum.net/resistyongin/PRr1/35 당선작 발표 /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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