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단절

달리기에 대한 짧은 소감.

by 꽃구름

달리기를 하기 전, 걷기 운동만 할 때 음악을 듣지 않았다. 걸으면서 주위 사람들 소리, 새소리,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산책하는 게 좋았고 산책인지 운동인지 모르게 휘적휘적 걸으면서 글에 대한 영감을 받고 영혼을 충족하는 시간이라 그런지 음악 같은 건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는 동안엔! 도무지 영감이나 영혼 충족 따위 할 틈이라는 게 없다.

숨은 차고 다리는 아프고 심장이 벌렁대고.

게다가 남편과 같이 뛰며 지적받은 신경 써야 하는 자세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다리를 신경 쓰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상체를 신경 쓰면 다리가 마음대로 보폭을 넓혀 무릎에 무리를 주니 도무지 여유롭게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들으며 뛰기 시작했는데 제법 괜찮았다.

아이돌의 댄스음악들 비트들이 대부분 빠르고 경쾌해서 뛰면서 힘들 때 내 발과 다리에 리듬을 실어주었다. 훨씬 뛰기 좋았다.

오늘은 남편이 쓰던 골전도 이어폰을 끼고, 집에서만 착용하는 안경을 쓴 채 나왔다. 원래는 렌즈를 착용하는데 지난주 휴가 때 수영장 물놀이 갈 때 렌즈를 하고 들어갔더니 결막염처럼 눈이 벌게져서 오늘 안과에 다녀왔다. 2-3일 렌즈착용을 하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안경을 쓰고 뛰러 나갔다. 평소에 워낙 안경을 불편해하고 뛸 때 습기가 찰 까 걱정되어 아예 안 쓰고 가려다가 저녁인데 뵈는 게 없으면 위험할 것 같아 쓰고 나온 것이었다.

골전도 이어폰에서는 빵빵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알이 큰 안경은 마치 고글처럼 내 얼굴을 보호해 주었다. 걱정할 만큼 습기도 차지 않아 불편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 말소리나 소음, 물소리 같은 것들이 단절된 채 빠른 비트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들과 함께 있지만 나는 다른 세계에 있는 기분이다.

쿵쿵 쿵쿵. 비트에 발걸음을 맞춰 뛰니 뭔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음악의 효과가 이렇게도 좋다니.

물론 땀은 비 오듯 흐르고 다리는 저려오지만, 귓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이 나의 전신을 신나게 해방시켜 주는 기분이다.

오늘 달리기는 20분 쉬지 않고 뛰기인데 그 안에 천천히 달리기, 보통속도 달리기, 빠르게 달리기가 구간 별로 나뉜다. 평소 나는 빠르게 걷는 사람에게 추월당할 만큼 느리게 뛰는 편이라 이 페이스를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던가. 내겐 지면을 닿을 두 다리가, 동력을 주는 팔이, 그리고 아이돌 음악이 있다!

계속 속도가 똑같겠지 하고 자신 없어했던 스피드는 다 뛴 후 기록을 확인해 보니 안내에 따라 조금씩 빠르게 기록이 당겨져 있었다.

오예.

전혀 못할 것 같았는데 해낸 흔적들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보물 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것 같은 기쁨이다.

나는 오늘의 이 영광을 나를 뛰게 해 준 세븐틴에게 기꺼이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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