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늘 가던 길.
아장아장 잘 걷는 둘째와 유치원 가방을 멘 첫째와 함께 등원차량을 기다리기 위해 집을 나섰다.
유치원 차량이 오는 곳은 집 바로 근처라 어른 걸음으로야 금방이지만 아이 둘, 특히 17개월의 아가와는 나가는 과정부터 녹록지 않은 게 사실이다. 게다가 차량 시간을 딱딱 잘 지키는 유치원 차고, 우리가 늦어 남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기에 늘 신경이 쓰여 마음이 바쁘다. 오늘은 차량 오는 시간 직전에 빠듯하게 도착한 직후였다.
비가 후드득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어쩌지"
아파트 단지 사이의 작은 도로가라 비 피할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들어가 우산을 가지고 나올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지난번에도 비 오는 줄 모르고 그냥 내려왔다가 난감해하고 있는데 11층에 또래 아이를 키우는 언니를 만났다. 그 언니가 흔쾌히 우산 쓰고 가라며 빌려주어 살았는데, 지금은 그 언니를 마침 마주치고 지나친 뒤였다.
"아, 아까 우산 빌릴걸"
그 언니의 손에 들려 있다가 우리가 우산 없이 나오자 비 안 오네 하며 접었던 그 우산이 아른거리며 아쉬웠다. 비는 점점 더 많이 오기 시작했고, 나는 둘째를 안고 첫째를 곁에 끼고는 맘 졸이고 있을 때였다.
"비 오는데 씌워 드릴게요."
최근에 이사 온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를 둔 엄마였다. 놀이터에서 한두 번 본 적 있어서 인사를 텄고, 그 집 아이의 등교시간과 우리 아이 등원 시간이 맞물려서 아침에 항상 마주치던 터라 매일 인사하게 된 분이었다. 인사만 나누었지 따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는데, 내가 난감해하고 있는 걸 알았던지 자신의 우산과 등교한 아이 우산까지 펼쳐 우릴 씌워 주었다.
"아, 진짜 감사합니다."
나는 구세주 같은 그녀의 온정을 향해 감사인사를 했고, 유치원 차량이 올 때까지 우산을 씌워주었다. 5분? 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동안 지나치기만 해서 묻지 못했던 안부를 물었다.
"아이 다친 건 괜찮아요? 깁스했던데"
어느 날부터 깁스한 아이를 보고 어쩌다 다쳤나 궁금하긴 했지만 인사만 하고 돌아섰던지라 못 물었던 말이었다. 짧은 시간에 나는 그 궁금증을 해소하고, 어색함도 해소했다.
그리고 유치원 차량이 도착했고, 첫째를 보내고 우리는 함께 걸어 올라왔다. 첨엔 기다리는 게 너무 시간 뺏는 건 아닐까 싶어서 우산을 빌리고 갖다 주겠노라고 하려다가 집이 어딘지도 모르고 물어보자니 또 조심스러워서 같이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집 앞까지 우산을 씌워준 그녀에게 감사인사를 다시 또 하고는 나는 둘째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다.
올라오면서 나는 어제 들은 공동체 교육이 생각났다.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함께 어울려 살아나가는 그분들이 참 부럽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어쩜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며 신기하고 보기만 해도 마음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생각해보면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 역시 그런 비슷한 분위기인 것 같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집 앞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내려와서 늘 인사를 나눌 누군가가 꼭 있다. 살갑게 아이들에게 말 걸어주고 아이가 인사하면 고마워하며 받아주시는 청소 아줌마나 친절한 경비 아저씨를 꼭 한 번씩은 마주친다. 그래서 우리 둘째 아이는 날 따라 곧잘 인사를 한다.
아까 말한 첫째 아이의 등원 시간엔 더하다. 학교나 유치원을 보내는 엄마들은 첫째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다녔거나 놀이터에서 만났거나 같은 동에 살면서 친해진 언니들이다. 그들과는 전쟁 같은 아침에 눈인사, 손인사 만으로 충분한 인사를 나누고 각자 아이를 데리고 제갈길을 간다. 그러고 등교하는 아이들 중엔 놀이터에서 본 아이들이 있어 첫째 아이와 이야길 나눈다.
"어? 저 언니도 학교 가네."
그럼 첫째 아이는 아는 얼굴을 봤다며 또 금방 반가워하며 뛰어간다.
우리 아이는 하원 후 놀이터 죽순이라, 나까지도 바로 옆 초등학교 아이들(우리 첫째도 내년에 입학할 그 학교다)과 아주 친밀하게 지내는 중이다. 이름도 다 알고, 나이, 무슨 학원 다니는 지도 자연스레 다 알게 되었다. 놀이터도 늘 오는 아이들만 오니까. 새로운 누군가 오면 확 티가 난다.
그리고 놀이터 운동기구에 늘 출근하시는 할머니들이 있다. 우리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배운 인사를 곧잘 하니 그 할머니들과도 늘 아는 척하게 되었다. 할머니들은 둘째 아이에게 인사를 시키곤 따라 하면 또 웃으며 칭찬해주신다.
우리 둘째 아이는 초등학생 언니들이 귀엽다며 잘 돌봐주고 놀아주는 통에 그 아이들이 있으면 나는 좀 쉴 수 있다. 우리 둘째는 그럴 때 신나서 엄마는 찾지도 않고 큰 언니들 사이에서도 잘 끼여서 개미 구경, 벌레 구경을 하며 논다.
놀이터에 자주 가는 첫째 아이 친구 엄마들과는 누가 정하지 않아도 돌아가면서 요구르트 세줄을 사서 빨대 꽂아 놀이터 있는 아이들에게 쭉 나누어 준다. 누군 주고, 누군 안 주고는 없다. 그냥 놀이터 안에 있으면 다 받을 수 있다. 요구르트가 가성비 제일 좋은 아이템이라 늘 우린 그걸 사고, 배고프다 싶은 애들이 많으면 과자를 곁들인다.
놀이터에 신나게 놀고 헤어질 때도 우리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내일 보자 하며 헤어지고, 초등학생 아이들도 다 흩어져 각자 집으로 간다.
올라올 때도 엘리베이터에 자주 보는 어른을 만나면 인사를 하고 함께 올라오곤 한다.
이 동네에서 꽤 살다 보니 이게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려 몰랐지만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 동네의 따뜻함과 다정함 같은 것들을 말이다. 매일 보는 얼굴들, 매일 친절을 베풀어 주는 이웃들이 있었다.
그리고 옆옆동에는 시댁 식구들이 살아서 걸어서 언제든 갈 수 있다.
첫째 아이가 어릴 때부터 다닌 어린이집이 있고, 바로 집 앞 학교도 있다.
난 아이가 좀 더 크면 더 넓은 집으로,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고 싶은 목표가 있다.
하지만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무리를 해서 그렇게 넓은 집, 좋은 집에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사는 것.
내가 어디 속해있다는 소속감을 주는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요새 같은 각박한 세상에 그것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들 말이다.
오늘은 놀이터에 앉아 아이를 기다리는 게 힘들다는 푸념 대신 동네 자체의 분위기를 즐겨보았다.
결론은 그거였다.
아, 재밌다! 좋다!
그래.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