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한 사람이다.
불안한 사람이 아이를 키우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아이가 잘못될까 불안한 마음에 다그치고 멀어지고 만다. 하지만 [ 다 널 위한 거란다.]라고 말하며 포장하고 싶진 않다. 어릴 때 내가 느꼈듯이 진짜 날 위한 거면 내가 맘 편하고 좋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다는 걸 나 역시 잘 아니까. 묘한 죄책감을 심어주는 그 말을 하며 내 불안을 미화시키고 싶지는 않다.
20대 때 그런 적이 있었다. 친한 고등학교 남자 후배가 있었다. 이성적인 감정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집도 가깝고 짝사랑 상담도 자주 해주는 사이라 그 당시 꽤 친하게 지냈었다. 한 번은 어떤 행사를 마치는 나를 차로 데리러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차를 가지고 있는 주변 친구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를 위해 와주는 수고로움이 미안하면서도 감격적이었다. 원래도 좀 시큰둥하고 츤데레이던 녀석의 대답이 그날따라 왠지 눈치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수석에 올라타서도 나는 후배 녀석이 싫은데 여기까지 억지로 온 것은 아닌지, 여자친구도 아닌데 데리러 와달라고 해서 짜증 났지만 말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계속 의심을 했다.
처음에는 ‘아니다.’라고만 하던 녀석도 집 앞에 거의 왔을 때까지 나의 의심하는 눈초리를 받자 조금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누나야를 태우러 갔는데 왜 싫어한다는 거고? 싫으면 태우러 갔겠나?”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근데 왜 난 계속 의심하고 있지? 그때 난 처음으로 내가 애정결핍이 있는 사람이구나 알게 되었다. 계속 나에 대한 애정이 있음을 확인받고 싶어 하고, 특별한 존재이고 싶어 하는 그런 애정을 갈구하는 타입.
그래서인지 20대 나의 오랜 연애의 끝은 항상 남자친구가 지쳐서 그만하자 하는 식이었다. 늘 서운해하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여자친구의 방식은 해가 쌓일수록 돌처럼 무거워졌을 테니까.
나의 20대는 그렇게 관계 속에서 허우적대며 애정에 대한 ‘확인’을 하며 흘러갔다. 결혼을 하면서도 어렴풋이 만 알고 있던 내 이 애정결핍은 아이를 낳으면서 불안의 형태로 나타났다.
온전한 사랑을 주어야 하는 존재 앞에서 나는 진정한 애정을 주는 법을 몰랐고, 정답이 없어 괴로워했다.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이고 다정한 엄마가 되고 싶은데 자꾸만 나오는 나의 본모습, 즉 짜증 내고 화내고 억압하는 나를 느낄 때마다 죄의식과 불안감의 파도를 맞아야 했다.
반성한 후에는 또 며칠 아이에게 잘하다가도 긴장을 놓으면 금세 또 올라오는 본능.
그걸 겪으며 나는 알았다. 화, 슬픔, 분노에 대한 감정을 진짜 어른처럼 표현하는 일을 배운 적 없는 무늬만 어른이 나라는 걸 말이다. 그걸 아이에게 가르치려니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또 스멀스멀 불안은 올라온다.
이제까지 10년 가까이 육아를 하며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말은 그거다.
나처럼 불안한 애로 자라면 어쩌지? 나처럼 자존감이 낮아서 상처받고 힘들어하면서도 관계를 놓지 못하고 쩔쩔매는 사람이 되면 어쩌지?
나는 그게 두려웠다.
마치 그런 느낌이다. 내 안에 불안이라는 구슬을 움켜쥐고 있다. 오묘하고 음침한 빛을 내는 그 구슬을 놓지도 못하고 꽉 움켜쥐지도 못한 채 그대로 아이의 손에 물려주게 될 까봐 걱정인 거다.
여기까지가 산책 나간 길목에서 내가 한 생각이었다. 운동을 다하고 잠시 앉아 위를 올려다보았었다. 나뭇잎이 떨어진 앙상한 가지를 보며 하늘이라는 구슬을 잡은 손처럼 보였다. 마치 불안을 쥐고 있는 내 손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하자 내 인생을, 지긋지긋한 이 불안과 애정결핍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에 대한 생각들이 20대의 기억까지 돌고 나자 나는 알았다.
이것마저도 불안인 것을.
그리고 내가 걱정하는 것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왜 갑자기 그걸 깨달은 지는 모르겠다. 그저 최선을 다하는 하루하루가 쌓여 내게 다른 결론을 들려주었다.
내가 움켜쥔 불안이라는 구슬을 아이에게 넘겼다고 치자 하지만 아이의 손에 그 구슬이 어떤 색을 띠게 될지 나는 단정 지어 버린 것이다. 결국 아이를 나와 동일시하고 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금쪽이를 보며 아이는 하나의 객체로 인정해야지! 늘 그렇게 외쳤으면서. 완벽한 언행불일치다.
이제 곧 생애 첫 10대가 될 아이를 보며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내 생각만큼 아이에게 내 영향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는 그저 아이만의 생각으로 행동을 할 뿐인데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오로지 엄마인 나 자신이다. 엄마의 불안이고. 그렇게 짐작하고 마는 MBTI N(직관형)의 특성이기도 하겠지.
내게 있는 불안을 왜 아이가 그대로 닮아 불행한 인생을 살 거라고 단정 짓는 걸까? 나는 사실 꽤 잘 살고 있는데 말이다.
요즘 나는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으며 삶을 좀 더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건강을 챙긴다. 내가 미약한 부분을 보충해 주는 서로 다른 기능을 해주는 내 친구들, 지인들, 동료들도 있고, 나를 지지하고 내 말 한마디 한마디 허투루 듣지 않는 남편도 있다. 아빠 닮는 것보다 엄마 닮고 싶다며 내 팔에 매달려 서로 차지하려고 애쓰는 두 딸도 있는데?
질풍노도의 시기와 혈기왕성한 20대 때 나를 무수히 괴롭히고 힘들게 했던 나의 애정결핍과 불안은 30대의 나에게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자신 없는 엄마라서 더 공부하고, 별 볼일 없는 인간이라 더 별 볼일을 만드는 내가 되게 해 주었다.
불안을 움켜쥐는 손을 가지고 나는 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 고민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불안은 번뇌하고 사색하는 인간의 숙명인지도.
어쩌면 ‘불안’ 은 나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