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구름 Mar 08. 2024

밖으로만 나도는 이유. 방랑벽.

마주하기.

집안은 엉망이고 설거지는 수북이 쌓여 있다. 우리 집엔 익숙한 풍경.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만 해도 우리 부부는 처음 산 우리의 첫 집이므로 열심히 쓸고 닦고 했다. 베란다 창틀까지 일주일에 한 번은 닦았으니까.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점차 짐도 늘고 몸도 피곤해지고 나이가 먹으면서 뒤죽박죽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하나 더 늘어나니 더욱 육아가 힘들어지고, 그 와중에 글도 쓰고 하려니 집안 살림은 점점 더 나의 우선순위 뒤로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생활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집안일들만 아이들이 다녀오면 급하게 치우고 먹이고 씻기고 한 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난 것 같다. 내가 원래 정리가 안 되는 극 P인 사람이기도 하지만 뒤죽박죽 된 집 안을 보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이 들곤 한다.

요 며칠, 내 감정을 마주 보자 생각하면서 하나씩 꺼내보기 시작했다.

나는 왜 살림 다 제쳐두고 밖으로만 나돌고 싶을까?

살림이 적성에 안 맞는 성격이라서 일수도 있겠지만 왜 그럴까 좀 더 깊게 생각을 해보았다.

항상 아이들과 실랑이하느라 날 선 말들이 오가는 우리 집. 첫째가 핸드폰을 가지게 되면서 더욱 잦아진 분쟁들.

매일 아이들을 잘 먹이고 잘 재우고픈 엄마의 지시적인 말과 자기 욕구를 채우려는 아이들과의 신경전.   

아이들은 집을 어떻게 생각할까?

 어쩌면 아이들에게 집은 쉼의 공간이 아니라 어쩌면 고통의 공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한 나의 어린 시절. 엄마가 자주 저녁에 집을 비운 것을 떠올렸다.

완전 FM 스케줄대로 일과 집 밖에 모르고 술은 못하는 아빠와 사람들 만나 이야기 하고 술을 좋아하는 자유분방한 엄마는 내가 어린 시절 늘 부딪혔다. 그러다 엄마가 친구와 술 한잔하고 새벽 귀가를 한 날이면 우리 집은 마치 얼음으로 만든 집처럼 싸늘한 냉기가 흘렀다.

그래서 엄마는 늘 밖으로 나돈다는 느낌이 강했다. 30년 동안 잊고 있었는데 그제야 생각이 났다.

물론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아빠가 답답한 면이 있어서 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그랬다는 걸 안다. 성인이 되고서 엄마를 많이 닮은 내가 아빠랑 둘이 살면서 뼈저리게 체감을 했으니까. 두 분은 각자 보면 좋은 사람들이고 자식에 대한 사랑은 많았지만 늘 싸우기만 하는, 사이 좋은 부는 아니었다.

어쨌든 내가 왜 살림에 집중하지 못하고 늘 밖으로 나돌까 생각해 보니 그 시절 엄마가 떠올랐다. 딱 큰 아이 만할 때의 내가.

집안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밥은 되어 있었지만 엄마는 저녁에 나가는 일이 많았고, 그 뒤에 벌어지는 싸움들은 언니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언니마저 스무 살이 되자마자 서울로 일하러 가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는 중학교 2학년. 그때, 내가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탔다고 느낀 시절이었다. 마음을 나누고 얘기할 언니가 없어서, 나는 엄마, 아빠에게 내 디테일한 감정들을 얘기할 수 없었고. 방안에 누워 언니와 함께 붙인 야광별을 보면서 공상이 많아졌던 시기도 바로 그때였고.

잊고 있었던 그 사실을 깨닫자 나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띵해졌다.

엄마처럼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무수히 다짐하던 날들이었는데, 결국은 나는 엄마의 영향과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눈물이 났다.

부모라는 존재가 무엇이기에 내 나이 40년이 되도록 나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아이들마저 나처럼 외로움을 느끼고 가정에서 부유하는 존재처럼 만들 순 없지 않은가.

아마 부모라는 존재,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아마 평생을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힐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때 그 상황에서 최선을 하려고 했던 엄마, 아빠를 비난하고 싶진 않다. 이제 그런 비난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걸 아니까.

나는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내 안에 방랑하고 가정에 정박하지 못하는 이유를 마주하고 인정해야만 나는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고 자꾸 방황하는 이유를 이제 조금 알았으니, 아이들에게 가정이 힘든 공간이 아니라 좋은 울타리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