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구름 Mar 11. 2024

나만 불행한 것 같다는 착각.

감정 마주하기.

지난주, 나는 내내 가라앉아 있었다.

나만 왜 이렇게 삶이 힘들까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이고, 잘 헤쳐나가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나를 더 가라앉게 했다.

이 상황만을 보고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하고 나의 행복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다수의 (누군가 특정 짓지도 않은) 행복에 빗대어 내 행복이 너무나 얕고 가볍다는 생각을 하며 한없이 가라앉았다. 그 대상이 확실히 누구인지도 행복이라는 주관적인 것을 수치상 따질 수도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비교 후에 꼭 따르는 것은 바로 자책. 후회.

내가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야. 엄마인 내가 불안하니까 애들도 말을 안 듣고 불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거야.

내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이들은 더 편안하게 지내며 자랐을 텐데.

TV에 나오는 엄마, 아빠들이 아이와 소통하고 얘기하고 놀아주는 완벽한 것과 또 비교하며 나는 자책을 하는 것이다.

자존감 낮은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관련 수업, 육아서, 육아 유튜브에서도 무수히 봤지만 이론적으로 세워 놓아도 머리로만 이해한 이론들은 몸에 깊게 체득되지 않아서 우울감이 밀려올 때 다시 예전의 방법을 찾아내 어리석은 생각들을 반복한다.

나는 조금 리프레쉬를 한 뒤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나서 생각했다.

나의 자책의 반은 틀리고, 반은 맞다.  

부족한 부분은 물론 반드시 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란 건 없으니까. 자존감이 높고 성격이 좋고 가족들과 다 화목한 사람들도 꼭 실수하고 화나고 힘든 일들이 있을 테니까. 부족한 건 팩트지만 '나만' 그렇다는 건 우울감이 만들어낸 '거짓된' 사실이다.

사연 없는 집이 어디 있겠는가. 힘들지 않고 평탄하게만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 불행을 받아들이는 방법에서 나의 결론은 항상 자책이었다. 그 불행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는 그 일을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우울감을 쫓는 행동을 한다. 40이 되도록 내 안에 익숙한 방법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 감정을 마주 보자 알게 되었다. 나는 불행을 선택한 것이란 걸.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그러면 끝도 없는 우울감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사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또 삶이 힘들고 지치면 그런 버릇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이다.

연습이 필요하다.

사실 그대로만 받아들이고 불행으로 해석하지 않을 연습.

이 감정 마주 보기가 그 연습이 되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01화 밖으로만 나도는 이유. 방랑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