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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우 Mar 16. 2021

병원에 혼자 앉아 있다

조각 에세이 #3 - 병원에서 떠오른 생각들

병원에 혼자 앉아 있다. 지난 목요일에 받은 수술이 제대로 되지 않았나 보다. 이틀 전부터 피가 다시 고이더니, 오늘 아침부터 제법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입 안 전체가 검게 물들어간다. 차라리 선홍빛이었다면 좀 더 안심이 되었을까. 불길한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검은 피다.


상처가 욱신거린다. 찡한 감각과 함께 뭔가 쏟아져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병원 화장실 세면대 한구석에서 피를 뱉어내고, 물을 들이마시고, 다시 뱉어낸다. 세면대가 나 대신 꿀꺽꿀꺽 피를 들이마신다. 그때 문득 거울을 올려다본 내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며칠 동안 수염은 깎지도 않고, 대충 말린 더벅머리는 영락없는 폐인의 꼴이다. 아니면 '여보시오, 나 환자요!'라고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는 격이다.


갑자기 웃음이 난다. 이게 헛웃음인가. 아니 근데 보라고. 누가 봐도 웃기는 모양새잖아. 어차피 죽을병은 아닐 테니 오늘 진료를 받고 수술 부위를 다시 꼬매든지, 지지든지 하면 될 거다. 근데 무슨 중병인 것 마냥 옆에서 피를 토해내고 있는 나를 보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어. 게다가 피를 뱉어내던 중간에 갑자기 혼자 피식거리는 꼴이라니.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나보다 아픈 사람은 많다. 겨우 이 정도에 멘탈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어차피 죽을병은 아니잖아. 그래. 엄밀히 말하면, 죽을병으로 발전하지 말라고 미리미리 조치를 하는 것이지만. 절대 죽을병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될 일도 없을 거다. 부디 그러길 바란다. 이번 검사 결과도.


이럴 때면 인생이 참 덧없다는 게 느껴진다. 일주전만 해도 맛있게 먹었음식들을 먹을 수가 없다. 의사소통은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가로젓는 게 전부다. 참 익숙해지고 싶지만 익숙해지지가 않는 감정이다. 아픔과 이별은 항상 그런 것 같다. 매번 새롭고, 매번 똑같아도 지루하지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런 소재에 대해 글을 써대는 것이겠지.


앞으로 나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해본다. 젊었을 때 잔병치레가 많으면 오히려 오래 산다고 했던가. 근데 이게 잔병은 맞나? 뭐 나름 잔병이라면 잔병이고. 뭐든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병원에 와 있는 사람들 모두 앞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오늘 회사 일은 글렀다. 팀장님께 갑자기 이래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사회에서 아픈 것은 분명한 죄다. 어쩌면 다른 죄의 대가인지도 모른다. 내가 입에서 피를 토하는 것은, 이전의 내가 입으로 너무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게 현생이든 전생이든 간에 말이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한 것 같다. 그러면 조금 납득이 된다. 그래. 내가 그랬지. 나를 떠난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든다.


사실 오늘 병원으로 가는 지하철에 핸드폰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말도 못 하는 상황이라 그냥 모른 척하려고 했는데 옆에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며 저게 떨어져 있다고 지적해줬다. 젠장. 이러면 도망가지도 못하잖아. 어쩔 수 없이 역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더듬더듬 최선을 다해 나의 위치와 인상착의를 말했다. 이런, 괜한 무리를 했는지 입 안이 투툭 뜯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피가 더 빠르게 난다. 그래도 좋은 일을 했으니 다행이다. 처음부터 그냥 자의적으로 할 걸. 때마침 달려온 핸드폰 주인 할머니가 역무원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은근슬쩍 고개를 돌리고 그곳을 빠져나갔다.


병원에 혼자 앉아 있다. 곧 이름이 불리면 진료실로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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