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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우 Aug 08. 2021

갈피 : 연(緣)

책장을 뒤적이다 가지런히 정렬된 책 사이로 혼자 툭 솟아오른 물건을 봤다. 책갈피. 얇은 합판 재질에 분홍색 싸구려 나일론 끈이 달린, 중국의 여러 명소들이 서툰 붓터치로 그려져 있는 책갈피다. 내가 언제 이것을 책 사이에 끼워놨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이것을 처음 선물받았을 , 그 책갈피 주변을 꽉 메우던 향기를 기억할 뿐이다.


책을 책장에서 꺼내고 책갈피도 빼냈다. 이전에 절반정도 읽다가 흥미가 떨어져 그만둔 책인 것 같았다. 나는 이전의 향기를 맡기 위해 책갈피를 코에 가져다 댔다. 약해진 향기의 빈 자리에는 책갈피를 품었던 책의 냄새가 배어있었다. 그때의 향이 조금은 남아있었지만 대부분은 그것을 품고 있던 책의 냄새였다. 나는 왠지 그 책에서 책갈피를 빼낸게 미안해져 다시 원래 페이지에 끼워놓았다. 그 책갈피는 그 책에 끼워져있는 게 '제자리'인 것 같았다. 책이 그 책갈피가 된 것인지, 책갈피가 그 책이 된 것인지. 적어도 그것이 지닌 냄새로는 구별할 수 없었다.



대학교 1학년 때 그 애는 작고 활발한 아이였다. 딱히 친구라고 부를만한 동기가 없는 학기 초, 가만히 교실에 앉아있던 내게 무작정 말을 걸어왔으니 말이다. 그 애를 처음 만난 건 아마도 으레 새학기마다 1학년들을 모아놓고 벌이는 술자리에서였다. 당시 술게임이다 뭐다해서 워낙 정신이 없고 낯선지라 얼굴이라도 제대로 기억하면 다행이었는데, 다음날 오전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그 애는 대뜸 내게 다가와 '내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멍한 눈으로 연막을 쳐놓고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편을 택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여자 아이와 말을 섞어본 적이 없는 쑥맥이었던걸 떠나서, 왠 낯선 사람이 대뜸 자기 이름을 퀴즈로 내는데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 날카로운 질문에 대답하여 살아남는 것 뿐이었다. 그 애의 눈빛 적어도 내가 보기엔 '말하지 못하면 즉각 사형에 처하겠다'와 '매우 배신감을 느껴 다시는 아는 척하지 않겠다' 중간의 무언가였다.


나는 더듬더듬 그 애의 이름을 되내이며 이름과 성의 자리를 바꾸어 말했다.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 애는 첫 술자리에서 자기를 소개할 때에 이름과 성의 순서를 거꾸로 말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나는 몇 달 간 그 애의 이름 첫 글자를 성으로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 애는 그런 나의 불완전한 대답에도 만족한 듯이 보였고, 내 자리를 유유히 떠나 동기 여자애들이 모여있는 자리로 사라졌다. 이걸 안도의 한숨이라고 해야 하나. 방금 벌어진  몇 초간의 어색한 정적으로 인한 찝찝함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그날 이후로 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이 확실하게 각인됐다. '별 이상한 절대 평범한 애는 아니구나.'


그 뒤로 그 애와 나의 접점은 많지 않았다. 나는 몇몇 동기형(재수생)들의 인재선발(?)로 피시방을 다니며 겜돌이 생활을 했고, 그 애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멀어졌다. 학기가 지날수록 공식적인 술자리도 드문드문 해진 지라, 더욱 마주칠 일은 적었다. 가끔 강의실이나 캠퍼스에서 보이는 그 애의 모습은 이전과 똑같이 활발하게 웃으며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아무쪼록 나와는 정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그 애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건 다문화가정센터에서 유치원생쯤 되는 아이를 돌보는 봉사활동 자리였는데, 나와 맨날 피시방을 다녔던 멤버가 포함되어 있었을 뿐더러 그 애도 간다고 하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봉사활동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었고, 외동인 탓에 유치원생은 커녕 동생 비슷한 것도 돌본 적이 없던 내게 그런 자리는 매우 생소한 곳이었다. 하지만 당시 내겐 그 애 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친분을 쌓는 것 자체가 일종의 동경 같은 것이었기에,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될 것 같았다.


물론 사람을 사귀는 데에 큰 재주가 없던 내게 봉사활동 한번으로 그 애 썩 가까워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때로는 잡으러 다니면서(내가 돌보던 아이가 유난히 장난꾸러기여서 사실 같이 뛰어다닌 기억밖에 없다.) 어느 정도 친한 척을 할 수 있는 사이 정도는 되었고, 이후 그것을 빌미로 나는 그 애가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몇 달에 한번 정도 문자로 안부를 물어 주었다.


정말 대뜸, 아무 것도 아닌 날에 묻는 그런 시시한 안부들에 그 애는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마치 처음 그 애가 나에게 무작정 이름을 물어봤던 것처럼, 어쩌면 나도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 그 애는 그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이상한 애라서 그런건가. 덕분에 한국에 돌아오면서 그 애와 나는 이전보다 훨씬 가까워진 사이가 되어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 한 번은 그 애가 대뜸 내게 '좋은 사람 소개시켜줄게'라 말을 건넸다. 혹시 여소인가. 누군가 여자가 소개시켜주는 여자는 만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흠흠. 어쨌든 그 애는 그날 나더러 페이스북을 잘 지켜보라고 했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랬더니 웬 걸, 누가봐도 시커먼 남성으로 추정되는 프로필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잔뜩 실망한 기분으로 핸드폰을 거세게 두드렸다. 이제 서로 욕을 건넬 수 있을 정도의 친분을 쌓자는 뜻이구나. 그런데 그 순간, 프로필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그 친구는 초등학교 시절 동네 절친으로, 나중에 이사를 가는 바람에 한동안 생사도 모르고 있던 아이였다.


"아니 네가 왜 여기있어?"


알고보니 그 친구는 줄곧 나와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었지만, 서로 학과가 다르고 군대 타이밍도 엇갈린 탓에 서로 몰랐던 것이었다. 친구와 그 애는 같은 관현악 동아리에서 알게 된 사이였고, 그러다 우연히 친구가 그 애의 핸드폰을 통해 나를 알게 된 것이다.


이게 인연이라는 것일까. 오랜만에 보는 초등학교 절친은 얼굴은 똑같고 키만 부쩍 자란 듯했다. 그 당시엔 키 번호로 1, 2번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훌쩍 자라 180cm가 넘는 훈남이 되어 있으니, 왠지 모를 배신감도 들었다. 하지만 거의 10년이 지난 후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의 소중함은, 그런 배신감을 덮어버리고도 남 것이었다. 등학교 시절 그 친구의 집에 도란도란 모여 글을 쓰고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을 나누어 먹은 기억까지 모두 선물처럼 돌아왔다.

 


갈피. 겹치거나 포갠 물건의 하나하나의 사이. 또는 그 틈. 약해진 향기의 빈 자리에는 그 '갈피'를 품었던 책의 냄새가 배어있었다. 그 애가 중국을 다녀와 선물했던 향기 나는 책갈피는 그와 닿은 모든 것의 냄새를 저장할 수 있었다. 책에 끼워 둔 것 책의 냄새가 났고, 코르크 알림판에 꽂둔 것은 옅은 공기의 냄새가 났다.


수없이 겹쳐진 시간과 기억 가운데, 앞으로  책이 얼마나 두꺼워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현재 그 애는 어엿한 7급 공무원이 되어 시청에서 일하고 있고, 초등학교 절친은 독일에 유학을 갔다가 귀국을 준비중이다. 하지만 그 애와 나, 그리고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서로 몸이 떨어져있어도 시시때때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갈피에 새로운 향기를 끼워넣는다. 지금 우리가 어느 책 어느 갈피에, 우리의 이름을 새겨 꽂아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  갈피에 어떤 향기가 배게 될 지 기다려다는 것이다.



2021년 8월 초, 무더웠던 여름 서서히 지나가는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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