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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우 Aug 15. 2021

좋은 사람

글을 쓰다 보면,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을 만나다 보면 우리가 생각보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특히나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나는 왜 말하지 않았을까. 그 사람이 소중하기 때문일까. 어딘가에 적어두면 그 종이가 바래는 것만큼이나 혹시 나의 마음도 그렇게 저물 것 같아서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바스락 밟히는 낙엽처럼 그런 마음이 조금씩 옅어질 것 같아서일까. 이 글을 쓰면서도 좀처럼 문장을 이어갈 수 없다. 왠지 모를 두려움이 느껴진다. 매번 그럴 듯이 흉내 내고 감춰놓은 시로는 당연히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좋은 사람,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제야 느낀다.


두려움은 좋아하는 마음의 본질이라고, 이젠 잘 기억나지 않는 어느 글에서 나는 썼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좋아하는 마음이 아님을 알고 있다. 불안이 지탱하고 있는 삶은 진정 아무것도 좋아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젠 좋아하는 마음을 귀중한 보석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도 싫다. 그렇게 사랑을 흉내 내고 싶지 않다. 온전히 좋아하고, 온전히 감사하고 싶다. 진심으로.


예전에는 나를 먼저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이 말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젠 적어도 나에게 엄격할수록 남에게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잣대로 나를 상처 입히면서, 그것이 나를 지탱하는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그런 마음은 보상을 바라고, 확인하고 싶어 하고, 끊임없는 다음을 요구하는 법이다. 절대 채워질 수 없는 밑 빠진 독. 나는 지금 사랑을 받았음에도 그런 나를 사랑하지 않은 벌을 받고 있다.


얼마 전 심리검사를 받으면서 내가 생각과 불안이 많다는 사람인 걸 알았다. 몸이 아닌 머리로 행동하는 사람. 사실 나도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항상 사소한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티 내지 않고 혼자 골똘히 생각하는 편이다. 한 가지 최악이자 다행인 것은 기억력 나쁜 편이라서 그때가 지나면 잘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 어쩌면 매번 생각에 짓눌려 있는 만큼 지나 보내는 것에 능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글에 에피소드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도 그렇다. 매번 이렇게 관념적인 글이 되고 만다.


이제는 어디에, 무엇 때문에 있는지도 모르는 두려움들이 오롯이 나 때문에 생겼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되풀이함으로써 다시 기억하지 못할 상처를 낸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굴레를 끊을 방법을 잘 모르겠다. 그저 단둘이 술 한잔하며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예전이 그립다.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지라도, 아무것도 없이 놀이터에 앉아 맥주 한 캔을 즐길 수 있었던 시절이 그립다.


문득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적어도 그런 사람들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던데. 그렇다면 너는 이미 좋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일지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지나 보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사람이 그리운 건가.

아니면 옛사람이 그리워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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