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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5.18 민주화 운동, 삶의 본질과 인간 존엄을 꿰뚫다

by 유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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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가 잘 쓴 역사소설인 이유

상황이 단순한 줄거리, 문장보다 앞서는 문학이 있다면, 바로 역사소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이젠 역사가 되어가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하지만 그런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아낸 이 책의 문장은 역설적이게도 아름답다. 그리고 그런 문장들은 이를 짓밟은 자들을 부각하는 장치로 활용되면서 더욱 빛난다.


아름다움이란 훌륭하거나 갸륵하다고 느끼는 감정이다. 여기서 갸륵함이란 착하고 장한 것, 또는 딱하고 가련한 것을 모두 포함한다. 그래서 아름다움이란 단순히 기쁨과 슬픔, 예쁜 것과 못난 것으로 이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름다움의 조건을 '사소함과 다가감'이라고 말한다. 무엇이든 가까이서, 더 가까이서 보아야 아름다운 법이다.


요즘 에세이와 개인 방송이 유행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 또는 '멀리서 보아야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은 이제 거짓말이 됐다. 특별할 것 없는 에피소드,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자체가 인기를 끄는 시대에서는, 단지 그것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제시하느냐에 따라 흥행과 실패가 갈린다. 그것을 우리는 크게 연출이라고 부르고, 글쓰기에서는 '공감의 문장'이라고 부른다.


'소년이 온다'는 그런 공감의 문장을 쓰기에 적합한 소재를 활용했다. 5.18 민주화 운동은 굳이 큰 연출을 하지 않아도, 이미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연출하고 되뇌었던 소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이점이 있는 만큼 자칫하면 고리타분하게 진행될 위험 역시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소재의 이점과 위험 요소를 모두 인식하고, 인간 본연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에피소드를 제시하는데 주목했다.


'소년이 온다'는 일곱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일곱 챕터로 나눠 단편 연작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다양한 인물들의 경험담을 제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챕터마다 문체와 시점을 바꿔가면서 다양한 느낌으로 사건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소년이 온다'를 읽는 독자들은 5.18 희생자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환상에 빠져들게 되며, 그곳에서 상처를 포함한 인류애적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곳의 등장인물들이 실제인지 허구인지 구분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는 당시 상황에 대한 꼼꼼한 자료조사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잘 쓴 소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소년이 온다', 소년은 지금도 오고 있다

모든 사람은 사실 아름다우며, 그렇기에 존중받아야 한다. 적어도 현대 사회의 우리는 그렇게 배웠고,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범죄자에게도 최소한의 인권이 있는 이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사람이 모여있는 사회는 아름답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 개인이 특정 사회 속으로 들어가 놀랄만큼 돌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회라는 조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요소가 바로 '공동의 적'이기 때문이다.


대개 '목표'라고 정의되는 그 공동의 적은 근본적으로 분노, 위기, 위협, 의협과 같은 인간 근본의 불안, 생존 본능, 또는 저항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과거의 우리, 그리고 지금의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장치이며, '소년이 온다'가 비추고 있는 삶의 모습이다. 우리는 특정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또는 결핍된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직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가진 우리는 5.18 민주화 운동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 아님에도 그 '고통스러운' 투쟁의 역사에 공감한다.


그래서 '소년이 온다'라는 책의 제목은 곧 소년이 지금도 오고 있으며, 우리 곁에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사실 소년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단순히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희생됐던 수많은 소년 소녀들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고, 민주 항쟁과 같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자는 뜻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위 관점에서 그 소년을 바로 '우리', 그리고 '나'라고 해석하려고 한다. 소년은 나다. 그런 나는 항상 무언가와 투쟁하는 존재이며, 세계를 헤쳐나가는 존재다.


소년이 온다. 그들의 넋이 온다. 창백한 빛이 몸들의 탑 위에 어른어른 머무른다. 우리는 그것을 체험했고, 체험하고 있으며, 투쟁하고 있다. 그 투쟁은 작게는 내 안에서,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일어나며, 나아가 사회와 개인의 투쟁, 자연과 자아의 투쟁, 세계와 나의 투쟁으로 확산된다.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주체들이 곧 소년이다. 그곳에 존재한 모든 사람들이 소년이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소년'이다. 5.18 민주화 운동으로 벌어진 확신할 수 없는 과거, 현재, 미래처럼, 그런 굴레에 얽힌 소년들은 항상 다가오고 있을 것이다.



끝나지 않는 고통, 삶은 이에 대한 '저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달은 밤의 눈동자라고 했다'. 이 책의 5장, 밤의 눈동자에서 맨 처음 나오는 말이다. 이 챕터에서 달은 검은 하늘 가운데 얼음같이 하얗고 차가운 눈동자이며, 사람들을 침묵 속에서 내려다보는 존재로 묘사된다. 주인공인 임선주는 현재 과거 노조 시위에 참여했던 성희 언니가 누운 병동의 한 도로를 걷고 있다. 그녀는 외등이 꺼진 깜깜한 병동의 도로 한가운데 그어진, 흰색 직선을 따라 고개를 들고 걷는다.


여기서 달은 타인의 감시, 압력 또는 독재 정권을 뜻하고, 흰색 직선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삶을 이어가는 사람의 생명줄을 뜻한다. 주인공은 외등이 꺼진 깜깜한 도로에서 오직 한 가지, 흰색 직선에만 의지해야 한다. 그것은 도로 '가운데'에 있다는 점에서 성희 언니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자, 자신의 삶을 연민으로 돌아보는 것 같이 주인공을 아슬아슬하게 지탱하는 대상이다. 사실 도로에는 실선도 있고 점선도 있는 법이다. 임선주가 따라가는 그 흰색 직선 역시 언제 끊어질지, 지워질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임선주가 '고개를 들고' 걷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둠 속을 헤쳐나가는, 아직 남아 있는 삶에 대한 저항심 또는 집착이라고 볼 수 있다. 유사 문학 장르에서 이러한 결말을 두고 단순히 극복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그런 결말을 절대로 극복이라 해석하지 않는다. 5.18 민주화 운동 이후 시간이 제법 지난 지금에도 임선주는 끝없는 고통을 겪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속에서 그녀가 살아가는 방법은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사실에 저항하는 것뿐이다. 사실 신이 되지 못한 인간은 어떤 일도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존재다. 그저 반항과 저항, 인내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자각하면서도 나아가는 태도는, 역설적으로 숭고하고 존엄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저항적 태도는 이 책의 에필로그인 '눈 덮인 램프'에서도 드러난다. 이 이야기에서 '램프'란 비추는 것, 곧 새벽에 무단으로 집을 조사하던 손전등과 서울의 한 예식장의 화려한 샹들리에로 대표된다. 이것들은 밤의 눈동자인 달처럼 긍정적인 의미가 아닌 거부감과 괴리감을 주는 대상이다.


주인공은 예식장의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에서 웃으며 말을 건네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 그렇게 점심을 먹지도 않고 예식장을 빠져나온 주인공에게서 우리는 그가 5.18의 끔찍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챕터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 주인공을 괴롭히는 것은 '방사능 피폭처럼 쌓인 경험들'이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램프, 곧 '빛나는' 대상은 달도, 손전등도, 샹들리에도 아니다. 정말로 빛나고, 빛나야 했던 대상은 '소년이 온다'의 등장인물들이자, 5.18의 희생자들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는 차가운 눈이 덮여 있다. 희생자는 이미 눈이 내리는 차가운 땅 속에 묻혀 있으며, 생존자 역시 방사능 피폭처럼 쌓인 상처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에 대한 저항과 인내뿐이다. 그것은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처럼, 파닥이는 불꽃의 가장자리를 묵묵히 들여다보는 태도로 드러난다.



한강의 문학, '소년이 온다'를 읽을 독자들에게

이 책은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근현대사의 거대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작가의 어떠한 정치적, 역사적 주관이 드러나지 않는다. 오직 그 속에서 발현된 인간의 모습, 고통, 그리고 상처에 대해 깊이 들여다볼 뿐이다. 그래서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작품을 읽으면 그 고통스런 감정을 여과 없이 느낄 수 있다.


한강은 강렬한 이미지와 감각적인 문장으로, 영혼을 재현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소년이 온다' 역시 단순한 역사소설을 벗어나 인간 본연에 대한 탐구가 작품 전반에 깔려있으며, 그런 이유로 아마 한강의 작품을 접한 적이 없거나, '소년이 온다'를 처음 읽는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면서 시름시름 앓게 될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몸이 아파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마치 건들면 건들수록 더욱 깊이 박히는 가시처럼,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내게 그런 작품으로 남았다.


나는 지금이라도 '소년이 온다'를 읽고자 하는 독자에게 말해주고 싶다. 단단히 각오하라고, 그리고 영혼을 관통하는 문장들을 버텨내라고. 그래서 두 번 다시 읽기 싫은 마음이 들지언정, 포기하지 말라고. 소년을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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